[디지털 위안화] ② '물밑 시험' 밀착 관찰…이미 일상 깊숙이
맥도날드서 온라인 쇼핑까지…디지털 위안화만 갖고 일상 가능 수준
시범지역선 누구나 8천만원까지 사용 가능…정식 '도입 선언'만 남았다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지하철역 음료 자판기에서 맥도날드 매장, 일반 식당, 백화점, 슈퍼마켓, 전자상거래 업체, 음식 배달 서비스, 차량 호출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경제 중심 도시 상하이(上海)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쓸 수 있는 곳이 어느새 이처럼 늘어나 있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비공개로 진행 중인 디지털 위안화 시험 현장을 최근 수 주간에 걸쳐 관찰해보니 '외부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디지털 위안화는 이미 중국인의 일상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어간 상태였다.
◇ 은행서 '판촉'도…누구나 가질 수 있게 된 디지털 위안화
디지털 위안화 사용 시범 도시인 상하이에 사는 회사원 리쉰(李迅·가명)씨는 지난달 은행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창구 직원의 권유로 디지털 위안화 지갑을 만들었다.
과정은 간단했다. 은행이 고객 인적 정보를 인민은행에 전산으로 올려보내면 실시간 심사를 거쳐 해당 고객의 스마트폰에 인증 코드가 날아왔다.
인증 코드를 넣으면 은행이 제공하는 디지털 위안화 지갑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할 수 있는데 앱을 설치하는 즉시 전자지갑이 활성화됐다.
디지털 위안화 시험 초기에는 극소수에게만 디지털 위안화 사용 기회가 주어졌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하이에서는 공상은행 등 대형 국유은행 지점들이 창구에 홍보물까지 내걸면서 경쟁적으로 디지털 위안화 고객 유치에 나섰다.
이는 이제 중국의 여러 시범 지역에서 디지털 위안화 사용이 사실상 보편 사용의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에서는 디지털 위안화를 어디서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최근 상하이의 주요 상업지역에서는 디지털 위안화 인프라가 빠른 속도로 확충되고 있다.
한국인도 많이 사는 상하이 구베이(古北)에 있는 일본계 대형 백화점인 다카시마야(高島屋) 일대도 디지털 위안화 사용이 쉬운 곳 중 하나다.
이 백화점의 직영 매장에서부터 슈퍼마켓, 식당, 카페, 잡화점 등지에서 모두 디지털 위안화 사용이 가능했다.
실제로 한 디지털 위안화 사용자를 따라 지하 슈퍼마켓에 가 봤다.
물건을 계산대에 올리고 디지털 위안화로 돈을 내겠다고 하자 직원은 익숙한 듯 고객 스마트폰 속 전자지갑의 큐아르(QR)코드를 스캔해 계산했다.
디지털 위안화로 값을 치르는 과정은 겉으로는 중국에서 널리 쓰이는 전자결제 수단인 알리페이를 쓰는 것과 거의 똑같았다.
백화점 7층에 입점한 한 음식점 주인은 "국가가 추진하는 사업이라 백화점 직영 매장뿐만 아니라 나머지 가게들도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며 "다만 아직은 디지털 위안화 사용자들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라고 귀띔했다.
백화점 근처의 다른 상업 시설들에서도 디지털 위안화 결제가 대부분 가능했다.
맥도날드 매장의 무인주문기에도, 연결 전철 역사 내의 음료 자판기에서도 디지털 위안화 결제가 가능하다는 안내 표지가 붙어 있었다.
온라인에서는 디지털 위안화를 쓸 수 있는 곳이 훨씬 더 많았다.
전자지갑 앱에는 디지털 위안화를 쓸 수 있는 인터넷 플랫폼 수십 곳의 목록이 나와 있었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한 뒤 비밀번호를 눌러 승인 절차를 거치면 해당 서비스 앱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결제 수단으로 고를 수 있게 된다.
전자상거래 업체 징둥(京東), 차량 호출 서비스 디디추싱(滴滴出行), 음식 배달 서비스인 메이퇀(美團)과 어러머(餓了?), 알리바바의 온·오프라인 슈퍼마켓 허마셴성(盒馬鮮生), 중국 최대 택배업체 순펑(順豊), 온라인 여행사 셰청(携程·트립닷컴) 등이 망라됐다.
중국에서는 당장 디지털 위안화만 갖고도 웬만한 일상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 알리페이 닮은 디지털 위안화…큐아르코드 스캔으로 결제
전자지갑에 디지털 위안화를 넣거나 연결된 은행 계좌로 돌려보내는 과정 역시 간단했다.
일단 자기 은행 계좌와 한 번 연동시켜 놓으면 디지털 위안화 앱에서 원하는 금액을 입력한 뒤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만으로 곧바로 충전됐다.
반대로 디지털 위안화 앱의 전자지갑에 든 돈을 언제든 은행 계좌로 돌려보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은행은 고객에게 수수료를 전혀 받지 않는다.
현재 중국 사업자들은 고객으로부터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로 받은 돈을 자기 은행 계좌로 옮길 때 일부 수수료를 내야 한다. 따라서 이들이 향후 수수료 손실이 없는 디지털 위안화 결제를 선호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개인 간 송금 방식도 알리페이 같은 기존 전자결제 시스템과 거의 같게 느껴졌다.
A가 B에게 100위안을 줄 일이 생겼다면 B가 먼저 자기 전자지갑 앱에서 받을 액수를 넣고 큐아르 코드를 만들어 상대방에게 보여준다. 이후 A가 B의 스마트폰 화면의 큐아르 코드를 스캔하면 자기 전자지갑에서 100위안이 B의 전자지갑으로 빠져나간다.
이미 사용 한도가 상당히 높게 설정돼 웬만한 경제생활을 할 수 있게 된 점도 눈길을 끌었다. 디지털 위안화가 오프라인 소액 결제를 위주로 운영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큰 차이가 이었다.
실명화 인증을 거친 일반 전자지갑의 최고 충전 한도는 50만 위안(약 8천800만원), 1회 지급 한도는 5만 위안(약 880만원), 일일 지급 한도는 10만 위안(1천760만원)으로 되어 있었다.
이처럼 물밑에서 진행되는 중국의 비공개 디지털 위안화 시험 동향을 지켜보니 공식 선언만 이뤄지지 않았을 뿐이지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도입이 이미 이뤄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느껴졌다.
상하이 외에도 현재 중국 당국이 지정한 디지털 위안화 시범 지역인 광둥성 선전(深?)시, 허베이성 슝안(雄安)신구,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 등 10개 지역과 베이징(北京) 올림픽 개최지에서 유사한 시험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공식 사용 선언은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은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자국의 법정 디지털 화폐 선전의 계기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이미 공개적으로 밝힌 상태다.
디지털 위안화 도입을 통해 중국은 미국과의 신냉전 속에서 위안화 국제화를 촉진하는 한편 민간 기업인 알리바바와 텐센트 양사가 장악한 금융 인프라를 국가 주도로 재편하는 등의 다양한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업계에서는 전제주의적인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상 중국이 일단 작심하고 디지털 위안화가 밀기 시작하면 결제 시장에서 단기간에 최소 10% 이상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상당히 많은 준비가 진행됐지만 알리페이 등 편리한 전자결제 수단에 익숙해진 중국인들이 앞으로 디지털 위안화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쓰려 할지는 미지수라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일반 사용자의 시각에서는 디지털 위안화가 알리페이만큼 편리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법정 화폐'라는 권위 외에 알리페이 이상의 가치를 보여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대부분의 중국 소비자들이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를 쓰는 상황에서 디지털 위안화가 소비자들에게 주는 혜택은 아직 명확지 않다"고 지적했다.
시험에 참여 중인 리쉰 씨도 "디지털 위안화 사용이 생각보다 편리했고 알리페이와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느껴졌다"면서도 "앞으로 국가가 디지털 위안화를 더 많이 쓰게 여러 수단을 동원해 장려하겠지만 지금으로써는 굳이 알리페이 대신 디지털 위안화를 써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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