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10억회분' G7 백신 기부가 통 크지 않은 이유
방향 옳지만 태부족이고 긴급성 떨어져…"백신 지재권 면제 한목소리 냈어야" 지적도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주요 7개국(G7)은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나라들의 모임이다.
중국이 경제 규모로는 미국과 선두를 다투는 형국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 등을 고려하면 가장 부유한 국가들은 역시 G7이다.
지난 13일까지 사흘간 열린 G7 정상회의에 대한민국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호주 등 4개국과 같이 초청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국격이 그만큼 올라갔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G7 정상들은 이번에 저소득 국가들을 대상으로 향후 1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10억 회분의 백신을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부자 나라들이 지구촌에 대한 자신들의 의무를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측면에선 바람직한 방향이다.
사실상 아프리카 대표 주자로 참석한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도 이번 G7의 백신 지원안에 대해 기뻐했다고 한다.
그러나 글로벌 보건 전문가들과 국제구호단체들은 대체로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고 AFP통신, 영국 자선단체 톰슨로이터 재단 등이 전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더라도 내년까지 전세계 인구 70%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위해 110억 회분이 필요한 상황이다.
G7이 약속한 10억 회분으로는 10분의 1도 안 된다. G7이 이전에 약속한 10억 회분까지 합쳐도 90억 회분이 부족한 셈이다.
이번 G7의 백신 지원은 미국만 먼저 화이자 백신 5억 회분을 지원하겠다고 한 것을 제외하고는 각국이 얼마만큼 부담할지도 아직 구체적이지 않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G7의 코뮈니케(공동성명)는 A4용지 25쪽에 달할 정도로 방대하면서 기후변화, 안보, 중국 문제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지만 정작 백신을 얼마만큼 각국이 부담할지가 빠져 있었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정상회의 전에 장관급 회의를 하고 사전 조율을 거쳤지만 그만큼 구체적 합의를 이루지 못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G7의 발표는 백신 공급의 긴급성 측면에서도 뒤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향후 12개월 안에 10억 회분을 공급한다고 했는데 지금 당장 북반구로 치면 여름이고 남반구로 치면 겨울인 계절에 필요한 것이 10억 회분이라고 국제구호개발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호소했다.
그나마 G7이 백신공평 프로젝트 '코백스 퍼실리티'에 약속한 백신을 열악한 아프리카에 우선해서 공급하겠다고 WHO가 밝힌 것은 다행이다. 코백스가 지금까지 공급한 백신은 131개국 8천500만 회분에 불과하다.
현재 G7 회원국 대 저소득 국가의 백신 접종 비율은 73대 1로 알려져 있다.
어마어마한 격차가 아닐 수 없다.
13억 인구 가운데 접종자가 2%밖에 안 되는 아프리카로 대비해서 보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G7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은 백신 지식재산권 면제에 대해 일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 등 100개국이 넘는 나라가 남아공과 인도가 제안한 지재권 면제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영국과 독일 등은 기업의 창의성 보호 등을 내세우며 지재권 면제에 반대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프랑스는 영국이나 독일과 달리 자체 백신을 개발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G7 공동성명에서도 회사들의 '자발적인' 지재권 면제를 언급하는 데 그쳤다.
G7이 보다 적극적으로 지재권 면제를 촉구한다고 해도 다국적 거대 제약사들이 움직일까 말까 한데 자발성을 중시한다고만 한 것이다.
그러잖아도 화이자 등 다국적 제약사들은 당초 백신 제공 약속에 턱없이 못 미치는 물량만 공급한 가운데 천문학적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비판을 보건 전문가들로부터 받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G7의 미지근한 백신 공급 구상으로 수백만 명의 목숨이 위험에 처했다고 성토했고, 자선단체 옥스팜도 G7 지도자들이 입으로는 전 세계적 코로나 종식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다국적 제약사의 독점과 특허 보호에 더 신경을 썼다고 비판했다.
물론 G7만이 아니고 중국, 러시아 등이 포함된 주요 20개국(G20)을 통해서도 백신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대한민국도 G20의 일원인 만큼 아프리카 등을 향한 국제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는 지난 14일자 일간 가디언 기고문에서 이번 G7 결정에 실망감을 드러내면서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에서 "백신을 제공하는 것은 자선 행위가 아니라 결국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불씨가 꺼지지 않는 한 변이 바이러스 형태로 기존 백신 접종자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G7 정상회의 직전에 마이크 라이언 WHO 긴급대응팀장은 한 웨비나에서 G7이 최강 부자나라들이라고 자랑만 할 것 아니라 당장 보건직원조차 접종을 못 하고 있는 가난한 나라들을 시급히 도와야 한다고 질타했다.
진정한 선진국의 국격은 최빈국을 어떻게 지원하느냐에 따라 판가름된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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