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톈안먼' 32년만에 처음으로 텅 빈 홍콩 빅토리아파크
경찰 집회 원천봉쇄·검문검색 강화…"물대포차·장갑차 이동"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홍콩 빅토리아 파크에서 매년 6월 4일 오후 8시면 켜졌던 수천수만의 촛불이 32년만에 처음으로 켜지지 않았다.
1990년부터 매년 6월 4일이면 수만명이 모여들었던 빅토리아 파크가 올해는 텅 비었기 때문이다.
6·4톈안먼(天安門) 민주화시위가 32주년을 맞은 4일 중화권 유일의 톈안먼 시위 대규모 추모행사는 홍콩 당국의 원천봉쇄 속에 결국 무산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경찰은 이날 오후 2시께 아예 빅토리아 파크의 대부분을 봉쇄했고 공안조례(공공질서조례)를 내세워 시민들의 접근 자체를 막았다.
홍콩 정부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31년 만에 처음으로 빅토리아 파크 촛불집회를 불허한데 이어 올해도 같은 이유로 불허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시민들이 당국의 불허에도 아랑곳없이 6월 4일 저녁 어김없이 빅토리아 파크로 모여들어 촛불을 켰고, 경찰은 그 규모를 2만명으로 추산했다.
올해도 집회가 불허되자 온라인에서는 그럼에도 빅토리아 파크에 모이자거나 다른 곳에서 집회를 열자는 논의가 오갔다.
이에 경찰은 올해 불법집회에 참여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고 강력 경고했고, 추모 당일인 이날은 아예 빅토리아 파크를 봉쇄해버렸다.
또 홍콩 전역에 7천명의 경찰 인력을 배치하고 주요 길목마다 2m 높이의 철제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어떤 종류의 집회도 열리지 못하도록 차량과 보행자들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SCMP는 오후 5시께 경찰의 물대포차 1대와 장갑차 2대가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도 전했다.
경찰은 시위를 상징하는 검은색 옷을 입고 빅토리아 파크 인근에서 구호를 외치거나, 그외 다른 지역에서 4인 초과 집합금지 명령을 어길 경우 공안조례 위반으로 체포될 수 있다고 사전에 경고했다.
촛불집회 무산 속에 오후 8시가 가까워지면서 민주활동가 1명이 몽콕에서 체포됐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경찰은 오전에는 빅토리아 파크 촛불집회를 주최해온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支聯會·지련회)의 초우항텅 부주석과 20대 남성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불법집회를 홍보하고 선전한 혐의로 체포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또 다른 민주활동가는 이날 오후 경찰의 봉쇄에도 빅토리아 파크에 홀로 들어가 톈안먼 민주화시위를 추모했다.
1989년 6월 4일 톈안먼 광장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의 발포를 직접 목격한 한둥팡(58) 씨는 검은색 셔츠를 입고 빅토리아 파크의 벤치에 홀로 앉아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로이터에 "나는 당시 현장에서 총알과 화염을 봤고 피를 봤다"면서 "오늘 그저 이곳에 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홍콩 공영방송 RTHK에 따르면 이날 오후 홍콩대에서는 학생회 주최로 '수치의 기둥'(Pillar of Shame) 세정식이 열렸다.
'수치의 기둥'은 1989년 중국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추모하는 조각상으로 1997년 홍콩대에 세워졌다.
학생회는 세정식 행사는 진실을 지키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자신들에 앞서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운 이들을 기억해야한다고 밝혔다.
애초 지련회는 빅토리아 파크 집회가 불허되면 이날 온라인에서 추모 집회를 개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당국의 강력 경고 속 시민들의 안전을 우려해 온라인 추모 집회도 취소했으며, 시민들에게 각자 안전한 곳에서 추모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SCMP는 경찰 관계자를 인용, 이날 대규모 경찰 인력을 전역에 배치하고 검문을 강화한 것은 오는 7월 1일 홍콩 주권반환일이나 입법회 의원 선거 등 하반기의 주요 행사를 앞두고 잠재적인 소요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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