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 유색인종 채용 안하고 차별금지법도 적용 예외"
가디언, 국립보존기록관 문서 입수해 왕실 내 차별 관행 폭로
버킹엄궁 "왕실과 여왕, 원칙적·실제적으로 평등법 준수"
(서울=연합뉴스) 박대한 기자 = 영국 왕실이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유색인종을 왕실 사무직(clerical roles)에 채용하지 않는 관행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1970년대 제정된 각종 차별금지법에도 불구하고 왕실은 현재까지 법 적용에 있어 예외를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일(현지시간) 국립보존기록관(National Archives) 문서 입수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그동안 일련의 기사를 통해 영국 왕실이 '여왕 동의권'(Queen's consent)을 이용해 왕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안을 사전에 검열하고 수정을 시도해왔다고 보도했다.
'여왕 동의권'에 따라 정부 관계 장관은 법안이 의회에 회부되기 전 법안 내용이 왕실의 특권이나 사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면 이를 여왕에 사전 보고한다.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영국 왕실은 최소 1960년대까지는 유색인종을 왕실 사무직에 채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왕실 최고재무책임자이자 다른 조신(courtier)들을 관리하는 왕실출납장관(keeper of the privy purse)을 맡았던 트라이언 경은 "유색인 이민자나 외국인을 왕실 사무직에 임명하는 것은 사실 관행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유색인종을 왕실 가사근로자로 채용하는 것은 고려될 수 있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이 같은 관행이 언제까지 유지됐는지는 확실치 않으며, 버킹엄궁 역시 답변을 회피했다고 전했다.
버킹엄궁은 1990년대 소수민족 출신이 채용된 기록이 있지만, 그 이전에는 채용자들의 인종별 배경에 관해서는 기록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와 별개로 영국 정부는 1970년대부터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각종 인종 및 성 평등 관련 법안을 도입했다.
1968년 당시 제임스 캘러헌 내무장관은 공공장소에서의 차별만을 금지했던 인종차별 법안을 채용 및 가사서비스와 같은 영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중 핵심은 일종의 옴부즈맨인 '인종 관련 위원회'(Race Relations Board) 설립으로, 위원회에 차별 관련 불만이 진정되면 이에 관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내무부는 이 같은 내용이 왕실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 '여왕 동의권'에 따라 사전에 이를 왕실 조언자들과 협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협의 끝에 영국 왕실과 여왕을 차별금지법의 적용 예외로 두는 조항이 들어갔고, 이로 인해 왕실 근무자는 차별을 받았다고 느끼더라도 법적 대응을 할 수 없게 됐다.
구체적으로 '인종 관련 위원회'는 왕실 근무자로부터 차별 관련 불만이 접수되면 이를 법원이 아닌 내무부에 넘기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왕실에 대한 법 적용 예외는 1976년 인종 관련법, 1975년 성차별법, 1970년 동일 임금법 등을 대체한 2010년 평등법으로도 이어졌다,
버킹엄궁은 성명을 통해 여왕이 법 적용 예외라는 점에는 이견을 제기하지 않으면서도, 왕실 내에 차별과 관련한 불만을 처리하는 별도의 절차가 있다고 해명했다.
가디언은 그동안 비판론자들은 왕실이 흑인과 아시아인, 소수민족 출신을 거의 고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해왔다고 전했다.
왕실 연구가인 필립 홀은 1991년 출간한 책에서 여왕에 가까운 취재원을 인용, 왕실의 가장 고위 조신 중에 백인이 아닌 이는 한 명도 없다고 폭로했다.
버킹엄궁 대변인은 가디언에 "왕실과 여왕은 원칙적으로나 실제로 평등법의 조항을 준수한다"면서 "이는 왕실 내 업무 정책과 절차, 관행에서의 다양성과 통합성, 품위 등에 반영돼 있다"고 밝혔다.
pdhis9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