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르포] 위기의 도시빈민 "쿠데타로 하루하루 밥 먹기 힘들어요"
쿠데타로 공사 중단되고 공장 닫아 밥벌이 끊겨…"도시 빈민 생존 막막"
뙤약볕 줄서서 종교단체 나눠주는 쌀로 생계 유지…쿠데타 군부는 무관심
(양곤[미얀마]=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지 100일이 훌쩍 지나면서 미얀마 도시 빈민들이 더욱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초래한 생존의 위기가 쿠데타를 겪으면서 훨씬 더 커진 것이다.
지난 20일과 21일 이틀간 기자는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 도심의 한 빈민촌을 찾았다.
무료로 쌀을 나눠주는 곳 뒤로 주민들이 뙤약볕 아래에서 꼬리를 물고 있었다.
2월 1일 쿠데타 이후 양곤 빈민촌에서는 한국과 미얀마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주민들에게 쌀을 나눠주는 장면이 많이 목격된다.
코로나19 대유행 당시부터 한인교회와 함께 양곤 도심 빈민들을 도와 온 한일문화학교 정광수 목사는 기자에게 "넉넉지는 않지만 4인 가족, 한 식구가 한 달쯤 먹을 수 있는 쌀과 양파, 소금, 식용유 등을 한 데에 넣어 지금까지 3천 가구 넘게 도왔다"고 말했다.
양곤 북다곤구(區) 응아모예익 천변에 산다는 다섯 아이의 엄마 예이모씨는 요즘 생활이 어떠냐고 묻는 기자에게 "코로나19 대유행 때에도 생활이 이렇게 어렵진 않았다. 군부가 들어서고 하루하루 밥 먹기가 너무 힘들다"고 탄식했다.
에야와디 주에서 남편, 아이들과 함께 양곤으로 와 8년째 살고 있다는 그는 "남편은 공사장에, 그리고 나는 공장에 나가면서 월셋집도 마련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남편이 공사 일도 못 나가고 쿠데타 이후로는 공장도 문을 닫아 돈을 벌 방법이 없다. 아이들 끼니도 제대로 못 먹이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빈민 지원운동을 하는 쩌쩟마웅 씨에 따르면 경제 수도인 양곤은 현대화로 공장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건설 수요가 많아지고, 이에 종사하는 건설노동자와 공장 근로자들이 부쩍 증가했다.
생활 수준과 물가를 고려할 때 임대료 및 땅값이 뉴욕과 맞먹는다는 양곤에서 빈민들이 살 수 있는 곳은 양곤을 가로지르는 강의 지류 천변이나 수로의 물 위에 대나무로 엮은 무허가 주택뿐이다.
쩌쩟마웅씨는 "양곤 등에서 도시 빈민이 증가하면서 기본적인 교육, 주택, 의료 등 문제가 이미 심각한 상태였는데, 쿠데타로 인해 그들의 생존 자체가 막막해졌다"고 했다.
미얀마는 세계 3대 쌀 수출국이다.
요즘은 코로나19와 쿠데타로 수출 길마저 막혀 쌀이 남아돌고 있다는데, 가난한 국민은 먹을 쌀이 없어 눈물을 흘리는 상황인 셈이다.
그러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 나섰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지난달 11일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이 국영 언론 카메라 취재진을 대동한 채 양곤 흘라잉따야에 와서 공무원들에게 쌀을 전달하며 생색을 낸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쩌쩟마웅 씨는 "실제 빈민들이 어떤 상황에 부닥쳤는지 전혀 모른 채 보여주기식 '쇼'만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평가절하했다.
정 목사는 생존 위기에 직면한 도시빈민에 대한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쿠데타 이후 공장도 문을 닫고 일용직은 일할 데가 없으니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도시 빈민들은 너무 딱한 상황"이라며 "지금도 굶주리는 빈민들이 많은 만큼, 이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지난달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쿠데타 이후 유혈 사태가 계속되고 있는 미얀마에서 300만명 이상이 굶주림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존 빈곤과 코로나19 사태 그리고 현재 정치적 위기 등 '3중고'로 굶주림 사태가 미얀마 전역에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WFP는 밝혔다.
그러면서 향후 6개월 내로 340만명 가량의 시민들이 굶주림에 직면할 것이며, 이는 특히 최대 도시 양곤 및 그 주변에서 더 심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WFP 미얀마 지부 책임자인 스티븐 앤더슨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직업을 잃으면서 식량을 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021340@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