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 임대사업자로 향하는 칼날…매물 토해낼까
(서울=연합뉴스) 김종현 기자 = 정부와 다주택자들의 힘겨루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정부는 지난 1년간 징벌적 세금으로 압박하며 다주택자가 매물을 토해내길 기대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집값 급등을 지켜보면서 다주택자들은 '버티면 이긴다'며 주택을 움켜쥐고 있거나 증여로 응답했다. 그러자 정부는 등록임대사업자들에게 칼날을 겨누고 있다.
◇ 세금 폭탄에도 1년째 버티는 다주택자
주택 공급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새로 지어 공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주택자들이 보유 물량을 풀도록 하는 것이다.
새로 지어 주택을 공급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공급 불안으로 시장이 불안하게 움직이면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도록 하는 정책이 동원된다.
다주택자가 집을 팔도록 하는 수단으로 한쪽에서는 세 부담을 낮춰 집을 팔도록 유도하는 당근책을, 다른 쪽에서는 '충격과 공포' 수준으로 세금을 높이는 채찍을 드는 게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시장에서는 당근책을 주문했지만, 정부는 작년 7·10 대책에서 채찍을 택했다. 견딜 수 없는 세금으로 매물을 내놓도록 하면서 불로소득도 환수하는 이른바 '도랑도 치고 가재도 잡는' 효과를 기대했다.
정부가 내놓은 세금 중과는 철퇴 수준이었다. 취득세와 종부세, 양도세 등 취득과 보유, 거래 등 모든 단계에서 세율을 확 끌어올렸다. 다주택자가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을 팔 때 적용하는 양도세 중과세율을 종전보다 10%포인트 더 높였다. 이에 따라 기본세율을 합한 양도세 최고 세율은 2주택자의 경우 62%, 3주택자는 72%로 올라갔다. 여기에 지방소득세를 붙이면 3주택자의 경우 집을 팔 때 80% 정도를 세금으로 내놔야 한다.
퇴로는 열어줬다. 조정대상지역 양도세 중과를 올해 6월 1일 시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는 정부의 참패다. 매물은 잠겼고 집값은 급등세를 지속하고 있다. 다주택자들은 양도세 대신 증여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7·10 대책 발표 이후 증여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작년 주택 증여 건수는 15만2천호로 전년보다 37.5%나 불어났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아무리 규제해도 집값이 오르면 이익이라는 생각에 다주택자들이 버티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증여는 종부세 부담을 낮추면서 집값 상승 이익을 가족이 누리도록 하겠다는 의도와 함께 향후 정책 변화 기대감도 작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 분출하는 임대사업자 특혜 폐지 요구
정부의 의도와 다르게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시장에 내놓지 않자 여당 내에서는 등록임대사업자에게 주는 세제 혜택을 대폭 줄이거나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강병원 최고위원은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주택임대사업자의 과한 세제 특혜를 단계적으로 축소해 이들이 보유한 매물이 단기간에 시장에 공급되게 하면 빌라 등 중저가 주택 수요자들이 지금보다 쉽게 집을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 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도 임대사업자 혜택이 불공정하다며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진성준 의원은 지난 4일 노형욱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등록임대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세제 혜택 등이 부동산 투기의 빈틈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며 혜택 축소를 주문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김두관 의원은 지난달 26일 "소형주택 공급이 지속해서 늘었지만, 임대사업자가 사들이는 비중이 더 커지고 있다"면서 "임대사업자에게 다양한 세제 혜택을 준 것이 집값 폭등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했다.
이처럼 임대사업자 혜택 철폐 요구가 거세자 민주당 부동산 특위도 현재 이 부분을 어떻게 할지 논의 중이다. 부동산특위는 의무 임대 기간이 끝난 주택에 대해 6개월 정도 유예기간을 준 뒤 양도세를 중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 7·10 대책으로 민간임대주택특별법을 개정하면서 단기임대(4년)와 아파트 장기 매입임대(8년) 사업은 폐지됐다.
이에 따라 법 개정 전 160만호였던 등록임대주택은 작년 말까지 46만호 정도가 자동말소됐고 여기에 자진말소까지 합하면 약 60만호의 사업자 등록이 말소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업자 등록 말소 때 임대의무기간을 절반 이상 채운 자진말소의 경우엔 1년 안에 팔아야 양도세 중과를 피할 수 있지만, 임대의무기간을 모두 충족한 자동말소는 양도세 중과를 무기한 면제받고 있다.
작년 8월부터 최근까지 자진말소 임대주택은 20% 정도가 시장에 풀렸지만, 자동말소 임대주택은 2%만 매물로 나왔다. 따라서 임대사업자 세금 혜택 폐지를 요구하는 여당 의원들은 자동말소 사업자의 양도세 혜택을 없애면 매물이 증가하면서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주택 임대사업자는 취득세나 종부세, 양도시 장기보유특별공제, 부가세 환급 등의 세제 혜택을 받는다.
대신 임차인 보호를 위해 임대의무기간(10년)을 지켜야 하며, 임대보증금 보증보험 가입 의무와 함께 임대료 증액 제한(5%)을 받는다.
◇ 전문가들 "함부로 휘두를 칼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자료에서 "등록임대주택 제도를 폐지하는 경우 민간 임대에 거주하는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 저하가 우려된다"고 했다.
그는 "이 제도를 폐지하면 임차인은 동일한 주택에서 장기 거주가 어렵고, 임대인의 과도한 임대료 인상 요구도 제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당사자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장은 "정부 실정으로 인한 부동산 시장 혼란과 주택 가격 상승의 책임을 임대사업자들에게 전가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세금 혜택 폐지로 민간 주택 임대사업을 급하게 위축시킬 경우 부작용이 만만찮아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사업자의 세금 혜택을 거둬들일 경우 임대료를 올리는 방식 등으로 저항하면서 매물이 생각처럼 나오지 않을 수 있다"면서 "한 때는 민간 임대를 좋은 정책으로 권장하다가 죄악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등록임대제도가 투기에 이용되는 등 역기능도 일부 있지만 공공임대주택 비중이 9% 안팎에 불과한 상황에서 민간 임대주택을 갑자기 줄이면 임대차 시장의 매물 부족을 부를 수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함 랩장은 "이미 관련법이 강화돼 아파트 임대사업은 불가능해졌고 등록 말소 증가로 임대 물량이 많이 줄어드는 상황"이라면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등록임대사업 활성화를 정책으로 내세워놓고 이를 폐지할 경우 정부의 신뢰성과 일관성이 훼손된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우병탁 팀장은 "지금 민간 임대주택 가운데 대부분은 다세대, 다가구, 오피스텔 등으로 이들 주택이 집값 폭등을 불러온 것이 아니라 아파트 가격 급등이 시장 불안을 부른 만큼 임대사업자를 옥죈다고 해서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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