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 영구차·해군 모자…필립공이 손수 꼼꼼히 챙긴 장례식
여왕에게 평생 바친 충성 칭송…군 경력·그리스·덴마크 왕자 혈통 강조
코로나19로 20여 년 준비한 장례식 계획 수정…참석자 30명으로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랜드로버를 개조한 영구차를 타고 관에는 자신의 뿌리를 강조한 개인 깃발을 두른 뒤 해군 모자를 얹는다.
17일(현지시간) 영국 언론에 따르면 런던 교외 윈저성에서 열리는 필립공(에딘버러 공작)의 장례식은 수십 년에 걸쳐 본인이 손수 기획하고 꼼꼼히 챙긴 각본대로 진행된다.
99세로 별세한 필립공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식 준비팀 암호명은 '포스교'. 스코틀랜드 포스만을 횡단하는 열차가 통과하는 다리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필립공은 장례식 계획을 계속 보완해왔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필립공이 25년 넘게 장례식을 직접 준비했다고 말했다고 스카이뉴스가 보도했다.
그는 2003년부터는 랜드로버와 함께 영구차로 개조하는 작업을 해 왔으며 이는 2019년에야 마무리됐다고 스카이뉴스는 전했다. 이 차량은 영국에서 제작됐다.
영국 역사상 군주의 최장수 배우자인 필립공은 장례식에서 우선 평생 여왕을 향해 충성을 바친 점으로 칭송받는다.
다음 주제는 필립공의 군 복무 경력과 그리스·덴마크 왕자로서의 혈통이다.
여왕과 결혼하며 해군 장교 경력을 접고 여왕의 두 걸음 뒤를 지키며 살아온 필립공은 자신의 군 배경을 강조했다.
관 위에는 해군 모자와 칼을 올리고 장례식장에는 과거 2차대전 참전 등에서 받은 메달 등을 전시한다. 랜드로버는 군용차 색으로 도색했다.
관에 드리우는 개인 깃발에는 그리스와 덴마크를 상징하는 문양이 들어간다. 자신의 타이틀을 따온 에딘버러와 자신의 성인 '마운트배튼'도 포함됐다. 필립공은 여왕과 결혼하면서 그리스·덴마크 왕위를 포기하고 영국인이 됐고, 성도 어머니 측의 영어식 성으로 바꿨다.
장례식 음악 두 곡은 직접 제작을 의뢰했다.
필립공은 왕실이 대중과 호흡하고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도록 기획하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는 1953년 대관식 TV 중계를 밀어붙였고 왕실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도 했다. 민심이 돌아서며 자신의 가족이 그리스에서 쫓겨나 몰락한 아픈 경험으로 인해 왕실이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그러나 수십 년 치밀하게 짠 각본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변수로 인해 수정이 불가피했다.
번잡한 것이 싫다며 국장이 아닌 왕실장으로 치르고 일반인 참배를 생략하며 장례식 참석자도 800명으로 엄선했는데,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그마저도 직계가족 위주로 30명으로 줄었다.
당초 계획에서는 영구차 행렬이 런던 중심부 웰링턴 아치에서 윈저성까지 22마일을 이동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윈저성 내에서 8분 이동으로 대폭 축소됐다. 장례식 참석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멀찍이 떨어져 앉으며 외부에서도 사람들이 모일만한 행사는 없다.
필립공이 장례식 계획에 손자 해리 왕자와 관련한 왕실 내 위기 상황까지 반영했을지는 관심이다. 해리 왕자 부부는 왕실과 결별을 선언하고 미국으로 떠났으며 최근 미국 방송인 윈프리와 인터뷰에서 부인 메건 마클이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얘기를 꺼내 왕실을 뒤흔들었다.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 형제는 할아버지 장례식을 계기로 1년여 만에 처음 얼굴을 맞대게 됐다. 일각에서는 장례식이 이들의 화해의 장이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이들은 그러나 영구차 행렬에서 나란히 붙어 걷지는 않게 됐다. 과거 어머니 다이애나의 장례식 때 함께 했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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