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년 신비 '핵 얼룩'의 재발견, 암세포 아킬레스건 될까
암 억제 전사인자 p53의 유전자 제어에 핵심 역할
핵 얼룩·p53 연결 고리, 항암 표적 부상…저널 '몰레큘라 셀'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핵 얼룩(nuclear speckles)'은 포유류의 세포핵 내에 존재하는 '이어 맞추기 인자(splicing factor)' 항체로, RNA 합성이 중지되면 둥근 형태로 응집하는 성질이 있다.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대체로 균일한 입자 덩어리(IGC)와 크로마틴(염색질) 주변 섬유로 구성돼 있다.
처음 발견된 건 1910년으로 111년이 지났지만, 핵 얼룩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신비의 베일에 싸였던 이 세포핵 소체가, 암 억제 단백질 p53의 특정 유전자 그룹 조절에 핵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발견은 암에 대한 이해 증진을 넘어서 획기적인 암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대의 셸리 버거 세포·발달 생물학 교수 연구팀은 5일(현지 시각) 국제학술지 '몰레큘라 셀(Molecular Cell)'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의 수석저자를 맡은 버거 교수는 "핵 얼룩이 유전자 발현의 핵심 조절자 역할을 한다는 게 확인됐다"라면서 "이는 암에 대해서도 어떤 역할을 한다는 걸 시사한다"라고 말했다.
핵 얼룩엔 유전자의 DNA를 전사해 단백질 생성 정보를 가진 '전령 RNA'로 만드는 데 필요한 주요 분자들이 들어 있다.
핵 얼룩을 일종의 '보관 창고' 개념으로 이해한 초창기 이론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러다가 수년 전부터 핵 얼룩이 유전자 전사 과정에서 더 직접적인 역할을 한다는 증거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핵 얼룩의 정확한 기능과 제어 메커니즘을 확인하는 데까진 이르지 못했다.
버거 교수팀은 핵 얼룩 연구의 기술적 난점을 상당 부분 극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p53이 특정 유전자 그룹의 발현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핵 얼룩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걸 확인했다.
p53는 '마스터 스위치'처럼 유전자 활성화를 폭넓게 제어하는 '전사 인자(transcription factor)' 단백질이다.
그런데 p53이 특정 유전자 그룹에 이런 작용을 하려면 핵 얼룩을 거치는 과정이 필요했다.
표적 유전자들이 포함된 DNA와 핵 얼룩은 p53의 제어를 받아 한데로 모였는데 이 과정에서 둘 사이가 가까워지면 유전자 전사 수위가 급상승했다.
또 p53의 제어를 받는 표적 유전자 가운데 핵 얼룩을 통해 활성화한 것들은 암세포의 성장 중지, 암세포의 프로그램 사멸 등 항암 기능에 관여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연구팀은 특히 p53의 암 억제 작용과 연관된 핵 얼룩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p53은 유전자의 항암 신호를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이지만, 두 개의 암 가운데 하나꼴로 그런 기능이 교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암에선 p53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 억제 기능을 상실할 뿐 아니라 암 종양의 성장을 앞장서 부추긴다는 것이다.
버거 교수와 동료 과학자들은, 알려진 것과 반대로 암의 성장을 자극하는 돌연변이 p53의 유전자 제어에 핵 얼룩이 어느 정도 관여하는지 연구 중이다.
버거 교수는 "우리의 가설이 맞는다면 p53과 핵 얼룩의 연계를 방해하는 항암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라면서 "이 연결 고리가 암의 아킬레스건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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