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 사고 10년…한국 원전 안전 현주소는
최악 상황 견디도록 성능 개선했지만…불안 해소는 과제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기자 =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는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준 대재앙이었다.
대재앙의 후폭풍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원전을 가동하는 다른 국가들에까지 미쳤다. 단 한 번의 사고로도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안전성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긴 것이다.
나아가 우리나라에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점진적인 탈(脫)원전으로 에너지 정책의 무게가 옮겨가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 대규모 지진 확률 낮지만, 후속 대책 시행…96% 완료
9일 원자력업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판 경계에 위치해 대규모 지진이 빈번히 발생하는 일본과 달리 판 내부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대규모 지진 발생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안전지대로 평가된다.
일례로 우리나라는 일반 건축물에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1978년 계기 지진 관측 이래 10회(육상 6회·해상 4회) 있었으나 일본은 무려 4천400여회 발생했다.
그럼에도 국내 원전 업계는 후쿠시마 사고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원전으로 거듭나도록 꾸준히 후속 조치를 수행했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교육과학기술부(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가동 원전 21개 호기를 대상으로 종합 안전점검을 했다.
그 결과 국내 원전의 안정성이 충분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안전성을 확보하도록 총 56건의 장단기 개선사항을 이행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내렸다.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안전을 위한 설비 보강 개선을 핵심으로 하는 '후쿠시마 후속대책'을 추진했다. 현재까지 전체 56개 안전대책 중 54건(96.4%)을 이행했으며 남은 2건은 2024년까지 조치를 완료할 예정이다.
후속대책 중 하나는 국내 모든 원전에 '지진자동정지 설비'를 장착한 것이다.
이 설비는 리히터 규모 6.5 이상의 지진이 감지되면 원자로를 자동으로 정지시켜 원전이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한수원은 또 설계를 초과하는 지진에서도 후쿠시마와 같은 안전정지유지계통의 기능 상실이 일어나지 않게 3만8천500여개 기기의 내진성능이 최대 지반가속도 0.3g(규모 7.0) 수준을 확보하도록 개선 조치를 했다.
설계기준을 초과하는 해일 발생을 전제로 원전을 보호하는 해안방벽도 고리원전에 설치했다. 높이 10m, 길이 약 2.1㎞의 거대한 콘크리트 방벽이 원전을 감싸는 형태다.
원전부지고 기준 3m 높이의 해일을 가정해 비상전력계통 등 주요 설비의 침수를 방지하기 위한 방수문도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모든 원전에 설치됐다.
해당 방수문은 한수원이 2012년부터 개발한 것으로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내뿐 아니라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에도 적용됐다.
이밖에 극한의 자연재해 발생으로 다수 호기에 동시에 전력공급이 중단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이동형 발전 차량과 이동형 펌프 차량을 확보했으며, 모든 냉각기능이 상실돼 원자로 핵연료가 용융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도록 전기 없이 수소를 제거할 수 있는 피동형 수소 제거설비까지 설치했다.
한수원은 후속대책에 이어 설계기준을 초과하는 극한의 자연재해 발생 시 대응 능력을 평가하는 '스트레스테스트'를 모든 원전에 대해 수행했다. 2019년 6월에는 통합적인 사고관리체계를 담은 '사고관리계획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했으며, 현재 심사를 받고 있다.
◇ 탈원전에도 방사능 우려 여전…'불안 해소'는 숙제
이처럼 원전 당국과 업계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안전성 강화에 주력해왔지만, 방사능 유출 우려를 비롯해 원전을 둘러싼 불안은 쉽게 걷히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는 경북 경주 월성원전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된 것을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한수원 자체 조사에 따르면, 2019년 4월 월성원전 3호기 터빈건물 하부 지하수 배수로 맨홀에 고인 물에서 ℓ(리터)당 71만3천㏃(베크렐)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이는 원안위 관리기준인 4만㏃/ℓ를 뛰어넘는다.
한수원은 배수관로에 고인 물을 액체방사성폐기물 처리계통으로 모두 회수했다고 밝혔다. 이후 유입된 물의 삼중수소 농도는 기준치 이내인 약 1만㏃/ℓ 정도라고 설명했다.
원자력 학계 등 다수의 전문가는 삼중수소가 원전과 관계없이 자연계에 존재하기 때문에 기준치 이내 삼중수소 검출은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삼중수소 피폭 가능성이 있는 만큼 안전성을 충분히 따져야 한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논란이 지속하자 원안위는 지난달 '월성원전 삼중수소 민간조사단'을 꾸려 정식 조사를 시작했다. 이번 삼중수소 논란은 원전 안전성에 대한 신뢰가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는 원전의 안전성을 높이는 동시에 원전을 점진적으로 줄이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 중이다. 원전 자체는 안전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원전 밀집 국가여서 위험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원전 밀집도는 일본의 배가 넘는다. 비록 원전 사고 확률이 매우 낮기는 하지만, 요행을 바라면서 새로운 원전을 계속 짓고 운영할 수 없다는 게 정부 논리다.
정부 방침에 따라 월성 1호기는 조기 폐쇄됐으며 신규 원전 6기(신한울 3·4호기, 천지 1·2호기, 대진 1·2호기) 건설 계획은 백지화됐다. 정부는 노후 원전 14기의 수명 연장을 금지하는 방식으로 현재 24기인 국내 원전을 2038년까지 14기로 단계적으로 감축할 계획이다.
비록 탈원전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원전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주요 발전원이다.
작년 기준 원전 발전량은 16만184GWh, 전체 전력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0%로 석탄발전에 이어 두 번째로 발전량과 비중이 크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원전을 축소하더라도 원전의 안전성을 높이고 시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꾸준히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대형 원전 사고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원전 안전 국가"라고 강조하면서 "기술적 안전을 넘어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수준까지 국내 원전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높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bryo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