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의 예수' 미 에밀 카폰 신부 유해 70년 만에 찾았다
한국전쟁서 적군·아군 가리지 않고 돌본 '전장의 성인'
미 하와이 국립묘지 안장된 신원미상 참전용사 유해에서 확인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정윤섭 특파원 = 한국전쟁에 참전해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박애를 실천하다가 포로수용소에서 숨진 '한국전의 예수' 에밀 카폰 신부의 유해가 70년 만에 발견됐다.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은 5일(현지시간) 캔자스주 출신의 군종 신부 카폰의 유해를 찾았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DPAA는 하와이주의 국립태평양 묘지에 안장된 신원미상의 참전용사 유해 중에서 카폰 신부의 유해를 확인했다.
존 휘틀리 육군장관 대행은 성명에서 카폰 신부가 숨진 지 70년 만에 그의 유해를 확인했다면서 "카폰 신부의 영웅적인 행동과 불굴의 정신은 용기와 사심 없는 봉사라는 우리 군의 가치를 나타내는 본보기"라고 밝혔다.
캔자스주 필슨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1940년 사제 서품을 받은 카폰 신부는 1950년 7월 군종 신부로 한국전에 파견됐다.
그의 소속 부대인 미 제1기병사단 제8기병연대 제3대대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원산까지 진격했지만, 같은 해 11월 한국전에 참전한 중공군의 포위 공격을 받았다.
곧 부대에는 철수 명령이 떨어졌지만, 카폰 신부는 중공군 포위를 뚫고 탈출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전선에 남았다.
그는 통나무와 지푸라기로 참호를 만들어 부상병을 대피시켰고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다.
그는 중공군이 부상병을 사살하려 하자 목숨을 걸고 총구를 밀어내며 부상병을 지켰고, 교전 중 다친 중공군 장교까지 돌보는 박애 정신을 실천했다.
그는 병사들을 위해 지프 위에 담요를 덮어 제단을 만든 뒤 미사를 집전했고 고해성사를 받았다.
또 포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주검들 사이에 숨어 마지막 숨을 내쉬는 병사들을 위해 임종 기도를 올렸다.
결국 평안북도 벽동 수용소로 끌려간 카폰 신부는 그곳에서도 포로들을 위해 기도하고 봉사하는 삶을 실천했다.
그는 거동이 불편한 부상병의 옷을 대신 빨았고,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을 구해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음식과 약을 적군 저장고에서 훔쳐 동료들에게 나눠줬다.
자신보다 동료 병사들을 돌보는데 헌신했던 그는 이질과 폐렴에 걸려 1951년 5월 23일 3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전장에서 꽃핀 카폰 신부의 박애 정신은 살아남은 병사들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고, 1954년 그의 생애를 담은 '종군 신부 카폰 이야기'라는 책이 발간됐다.
한국에는 1956년 당시 신학생이었던 정진석 추기경이 '종군 신부 카폰'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판을 내면서 소개됐고, 그에게는 '한국전의 예수', '6·25 전쟁의 성인'이라는 별칭이 따라붙었다.
캔자스주 위치토 가톨릭 교구는 카폰 신부의 헌신을 기려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는 운동을 펼쳤고, 1993년 로마 교황청은 성인으로 추앙하는 시성 절차의 첫 단계로 카폰 신부를 '하느님의 종'으로 선언했다.
미국 정부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인 2013년 4월 카폰 신부에게 미국 최고 무공 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했다.
jamin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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