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아마존 뚫은 영주대장간 장인의 호미
45년 대장장이 한길…'명품 농기구' 탄생
(영주=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한국 전래 농기구인 호미가 세계적인 핫 아이템이 됐다.
한국 대장간의 장인이 만든 호미가 미국 아마존에서 절찬리에 팔리고 있다.
45년간 대장간을 지켜온 장인으로부터 호미 제작과정과 대장간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본다.
◇ 경쾌한 망치 소리 가득한 대장간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동생 요제프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대장간 폴카'는 쾌활한 대장간의 모습을 묘사한 곡이다. 대장간 폴카에서는 실제 대장간에서 들려오는 듯한 경쾌한 망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미하엘리스의 '숲속의 대장간'에서도 신나는 망치 소리가 들려온다.
서양 클래식 음악 가운데는 이렇게 대장간의 경쾌한 모습을 음악으로 표현한 곡들이 많다.
경북 영주시 휴천동에 있는 영주대장간에 들어섰을 때, 마치 대장간 폴카를 듣는 느낌이 날 정도로 활기찬 망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 4명의 대장장이가 망치를 두드리는 장면은 하나의 실내악단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눈에 봐도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경륜 있는 대장장이들의 망치질은 박자를 맞춘 것처럼 리드미컬하고도 신이 났다.
한 대장장이가 시뻘건 열기를 뿜는 화로에서 빨간 쇳덩이를 끄집어내 동력으로 움직이는 망치에 대고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또 다른 대장장이가 이것을 호미 모양으로 만들어낸다.
나머지 2명은 이를 받아 구부러뜨려 호미 모양을 낸다. 철저한 분업이다. 효율을 위해서다. 영주대장간의 대표인 석노기 씨 등 4명의 숙련된 대장장이들은 이렇게 협업한다.
올해 68살인 석씨는 "내가 가장 젊다"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가만 보니 한쪽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다. 일한 지 두 달 된 막내 박종현 씨다. 전통을 잇는 대장장이가 되기 위해 지난해 12월 영주대장간에 와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젊은이들이 잘 안 하는 일이지만 한번 도전해보겠다"고 말했다.
그가 하는 일은 비교적 단순한 일이다. 숙련된 대장장이들이 쇠질 한 호미를 나무 자루에 끼우는 것이다.
이곳에서 호미를 만드는 데 쓰는 철은 자동차 하부를 지탱하는 판스프링에 쓰는 강철이다. 그만큼 단단하고 내구성이 높다.
◇ 아마존으로 간 호미
작업이 끝난 호미 100자루를 택배 상자에 넣은 박씨는 매직펜으로 '아'라고 크게 쓴다. 아마존으로 갈 호미들이다.
이 호미들에는 한글로 자랑스럽게 '최고장인 석노기'라는 이름이 각인돼 있다.
이 호미는 아마존에서 얼마에 판매되고 있을까. 호미를 검색하면 여러 종류가 뜰 정도로 아류작들도 늘어났다.
대부분 14달러 수준인데 영주대장간의 수작업으로 만든 호미는 23달러나 한다. 물론 국내 호미 가격과 비교해도 4배나 비싼 가격이다.
석씨는 5년 전 우연히 어떤 사람이 호미를 가져다 아마존에 팔기 시작한 뒤로 주문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2019년에는 한 해 동안 아마존 원예 부문 상품 '톱10'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평점 5점을 준 리뷰도 89%나 됐다.
아마존 쇼핑몰의 설명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Containing the wisdom of Korean ancestors who had cultivated for a long time'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한국의 선조들의 지혜가 녹아있다)
리뷰에는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서양 이름으로 올라온 리뷰에는 'This tool is so efficient and effective at weeding'(잡초 제거에 아주 적합하고 효과가 좋다) 등의 글이 많다.
주로 유튜브를 통해 호미를 사용하는 영상을 보고 구입했다는 글들이 많았다.
경사는 이어졌다. 2018년 '경상북도 최고장인'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지난해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백년소공인'으로도 뽑혔다.
◇ 관광 아이템이 된 농기구
석노기 장인은 평생 대장장이라는 직업을 버린 적이 없다. 14살 때부터 대장간에서 일했고, 23살이던 1976년에 영주대장간이라는 상호로 개업했다.
충청도에서 태어난 그는 철도 중심지인 영주에서 농기구를 만들면 잘 될 것 같아 영주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는 "모든 것을 인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인데다, 여름 삼복더위에는 불 앞에서 일하기가 너무 힘들었다"면서 "옛날에는 선풍기가 부잣집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어서 대장간에는 선풍기 하나조차 없었다"고 회상했다.
석씨는 "그렇게 어렵게 배운 대장장이 일이 이렇게 주목을 받게 되니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힘든 대장간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없어 맥이 끊길까 두려워한다.
오후에 다시 대장간을 찾았을 때는 수원에서 온 관광객 몇 명이 호미와 낫 등을 사고 있었다.
텃밭용으로 쓸 호미를 사기 위해 찾았다는 한 관광객은 "다른 호미를 쓸 때는 목이 뚝 부러져버렸는데 이곳 호미를 쓴 뒤로는 그런 일이 없다"고 했다.
석씨는 이처럼 영주를 찾았다가 기념품으로 호미를 사 가는 관광객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가위와 호미 등의 미니 농기구 세트를 기념품으로 구성해 준비해뒀다.
대장간 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이 석씨의 꿈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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