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새 내각 구성 나선 드라기…유로존 구한 ECB 총재 출신(종합)
2012년 '유로존 위기' 소방수 역할…보건·경제 위기 극복 책무 맡을 듯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마리오 드라기(74)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이탈리아 정국 위기 해결사로 전면에 나서면서 정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집무실이자 관저인 로마 퀴리날레궁에서 드라기 전 총재를 만나 새 내각을 구성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오성운동(M5S)과 민주당(PD), 생동하는 이탈리아(IV) 등 기존 연립정부 구성 정당 간 재결합 협상이 좌초한 지 불과 하루 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부른 보건·사회·경제 위기 속의 국정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드라기 전 총재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금융경제통'으로 꼽힌다. 학계와 정부, 금융권을 두루 거쳤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탈리아 내 재무부 고위 관리와 중앙은행 총재, 세계은행 집행 이사, 골드만삭스 부회장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그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것은 2011년 11월 유럽 통화 정책을 총괄하는 ECB 총재에 취임하면서다. 그는 8년간 재임하며 유럽 경제의 격동기를 헤쳐왔다.
ECB 총재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지만, 호평하는 이들은 그를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을 구한 슈퍼 마리오'로 칭한다.
남유럽 재정위기가 닥친 2012년 짧고도 강렬한 연설은 지금도 회자한다.
모국인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스 등의 채무불이행(디폴트)과 이에 따른 유로존 붕괴 우려로 투자자들이 유럽 채권 매입을 꺼리자 "유로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 나를 믿어달라"는 한마디로 금융시장의 불안을 가라앉혔다.
그의 말을 신뢰한 투자자들은 다시 유럽 채권을 매입하기 시작했고 유로화도 달러 대비 강세로 돌아서며 최악의 위기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는 평이다.
지금 ECB가 시행 중인 회원국 국채 매입을 통한 양적완화 정책을 처음 시작한 것도 드라기가 총재로 있던 때다.
드라기 전 총재에게 이탈리아 총리 역할이 부여된다면 ECB 총재로서 유럽 경제의 소방수 역할을 한 것처럼 코로나19 여파로 현실화한 전후 최악의 경제 위기 극복이라는 책무를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이 코로나19의 경제 타격을 최소화하고자 이탈리아에 제공하기로 한 2천90억 유로(약 280조원)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도 당면한 정책 과제다.
이를 둘러싼 갈등이 연정 붕괴의 시발점이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
현지 정가에서는 드라기 전 총재가 위기관리에 초점을 맞춘 관료 중심의 실무형 내각 구성을 타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정치인을 배제한 가운데 이념 성향을 떠나 각 영역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전문가를 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그가 새 내각을 구성하더라도 의회 과반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기성 정치 타파를 핵심 당 정강으로 삼는 오성운동이 '드라기 내각'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드라기 전 총재는 이날 마타렐라 대통령과의 면담 직후 브리핑에서 내각 구성의 책무를 받아들인다고 밝히면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의회에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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