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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우한봉쇄 1년…깊은 상흔 뒤로한 채 '승리'로 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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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우한봉쇄 1년…깊은 상흔 뒤로한 채 '승리'로 미화
3m 벽으로 가려진 화난시장…'코로나 폭로 영웅' 리원량 흔적 없어
확산 초기 비난받던 공산당, 서방 혼란 틈타 회생…소수 비판 목소리 철저 통제


(우한=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이제 1년이네요. 우리에게 봉쇄 1년이 되는 날은 특별한 날일 수밖에 없어요."
중국 후베(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는 리(李)씨는 우한 봉쇄 1주년이라는 말에 감정이 북받친 듯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대답을 이어갔다.
그는 작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싸우는 '전장'의 한복판에 있었다. 처음으로 우한 전체가 봉쇄된 76일간 리씨는 자원봉사자로 나서 차를 끌고 다니며 아비규환이 된 도시를 오가며 환자들을 병원으로 실어날랐다.
작년 4월 봉쇄가 풀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중국에서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난 우한 사람들에게 남은 상흔은 깊어 보였다.
후베이성의 성도인 우한시의 통계상 상주인구는 1천100만명으로 중국 6대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 9개 성을 연결하는 교통 요지이자 내륙의 거점 도시라서 각지에서 유입된 유동인구가 많아 코로나19 발병 당시 우한에는 1천400만명가량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흔적 없는 화난시장…'외면받는 열사' 리원량
오는 23일 우한 봉쇄 1주년을 앞두고 코로나19 대유행이 가장 먼저 시작된 '그라운드 제로'라고 할 수 있는 우한을 1년 만에 다시 찾아갔다. 세계 전체의 코로나19 누적 감염자도 1억명 돌파를 눈앞에 둔 시점이기도 하다.
우한 도심 한커우(漢口)역 근처의 시장은 폐쇄된 채 3m 높이의 하늘색 벽으로 둘러싸여 완전히 가려졌다.
자동차 진입로 초소 겉에 작게 쓰인 '화난수산시장'이라는 빛바랜 글씨만이 이곳이 첫 코로나19 집단 감염지였던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당국은 높은 장벽을 둘러치고도 '민감한 장소'인 이곳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모습이었다.
화난시장 건물 2층의 안경 상가는 여전히 영업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로처럼 복잡한 화난수산물도매시장 1층 내부 골목을 내려다볼 수 있던 2층 복도 창문은 불투명 필름이 붙은 채 못질이 돼 열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코로나19라는 새 질병 확산을 경고했지만 불행히도 이 병에 희생된 고 리원량(李文亮·1986∼2020) 의사의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국가로부터 '열사' 칭호까지 받았지만 안과 의사이던 리원량이 생전 일한 우한중심병원 3층 진료실이나 1층의 병원 홍보 전시관 어디서도 그를 기리는 자료를 볼 수는 없었다.
다만 많은 우한 시민이 여전히 그를 마음속에 기리고 있었다. 병원 직원 정(鄭)씨는 "그는 매우 훌륭하고 좋은 의사였다"며 "이 사람은 마음이 넓어 백성들을
생각한 진정한 인민의 영웅"이라고 말했다.
리원량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은폐·축소에 급급했던 중국 당국의 어두운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민감한 영웅'이다.
2019년 12월 30일 그는 의대 동창 단체 대화방에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유사한 질병이 퍼지고 있다는 소식을 공유했다.
이를 계기로 '원인 불명 폐렴' 확산 소식이 중국 안팎으로 급속히 퍼져나가자 중국 당국은 그제야 관련 정보를 공개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유언비어를 유포했다고 공안에 끌려가 '반성문'을 쓰는 처벌을 받았다.

◇ 4만 가구 잔치까지…봉쇄 전 무슨 일 벌어졌나

작년 1월 23일 시작된 우한 봉쇄는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깨닫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중국 당국의 코로나19 대처는 여러모로 미흡했다는 평가가 많다.
'팬데믹 준비 및 대응을 위한 독립적 패널'(IPPR)은 18일(현지시간) 낸 보고서에서 "(작년) 1월 중국의 지방 및 국가 보건 당국이 공중보건 조치를 더 강력하게 적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중국 매체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2019년 12월부터 우한의 일부 병원에서 '원인 불명 폐렴' 환자가 급증했다.
2019년 12월 30일 우한시 위건위는 각 병원에 '원인 불명 폐렴 치료 업무에 관한 긴급 통지'를 하달해 관련 환자 발생을 적시에 보고하라고 지시하고 국가보건위생위원회에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
그로부터 열흘가량이 지난 작년 1월 11일에 이르면 감염자가 41명으로 늘어났고 사망자도 1명 발생했다. 그런데도 당국은 '사람 간 전염은 없다. 통제할 수 있고 막을 수 있다'(人不傳人 可控可防)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어 춘제(春節·중국의 설)를 1주일 앞둔 1월 18일 우한에서는 예년처럼 무려 4만 가구가 참가한 대규모 신년 잔치까지 열렸다.
그런데 '사스 영웅' 중난산(鐘南山) 원사가 1월 20일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을 공식 발표하고서야 분위기가 급변했다. 급기야 23일 오전 0시를 기해 인구 1천만명이 넘는 우한이 전격 봉쇄됐다.
작가 팡팡(方方)은 '우한 일기'에서 "'人不傳人 可控可防' 이 여덟 글자가 도시를 피와 눈물로 덮고 무한한 고통을 줬다"고 비판했다.
이후 우한에서는 환자가 폭증하면서 의료 체계가 붕괴했고, 많은 시민이 병원 문턱도 밟지 못하고 숨졌다.
공식 통계에 따르더라도 우한에서는 5만명 이상이 확진되고 3천869명이 사망했다.
1월 23일부터 4월 8일까지 76일간 이어진 봉쇄는 우한 시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봉쇄가 풀리자 장례를 못 치른 희생자 유족 수천명이 화장터에서 길게 줄을 서 마대에 담긴 유골을 받으며 통곡하는 장면은 우한의 비극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번화가 한제(漢街) 인근에서 맥주 전문점을 운영하는 야오(姚)씨는 "많은 사람이 가까운 친지나 이웃을 잃는 경험을 했다"며 "봉쇄가 풀리고도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무서워서 몇 달이 더 지나고야 가게 문을 겨우 열었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중국 공산당은 나라 안팎의 비난에 직면해 큰 위기에 봉착했다. 인터넷에서는 당국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누리꾼들의 글이 빗발쳤다. 코로나19 사태가 옛 소련을 붕괴로 이끈 '체르노빌 사건'에 비유되기도 했다.

◇ 중국, 코로나 '외부 기원설' 본격 주장하며 '역공'
하지만 코로나19로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이 큰 혼란에 빠지는 것을 계기로 중국 공산당은 반전의 기회를 포착했다.
중국은 타국보다 먼저 코로나19 확산을 저지하고 사회를 정상화한 것을 '체제 우수성'에 따른 결과라고 선전한다. 또 헌신적인 의료진과 자원봉사자의 모습, 최고 지도부의 관심 등을 크게 부각하면서 코로나19 극복 과정을 승리로 미화시키려 한다.

초기 대처 미흡 책임은 일부 관료주의에 찌든 지방의 관리들에게로 돌려졌다.
'서방 세계'의 혼란이 이어지면서 실제 많은 보통 중국인 사이에서는 자국의 코로나 대처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주류를 이룬다.
화난시장 안경 상가 직원 펑(鵬)씨는 "정부의 대책에 크게 만족한다"며 "작년 혼란스러운 상황도 있었지만 그땐 우리가 이 역병에 대해서 잘 모를 때였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나아가 '코로나19 중국 발원론'을 부정하면서 이탈리아, 미국 같은 타국에서 코로나19가 발원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역공을 편다.
이런 중국 내 여론 형성에는 비판적 목소리를 배제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1년간 중국에서는 코로나19 대처를 공개적으로 고발했던 시민 기자 여럿이 실종·구금됐다. 법원은 지난달 시민기자 장잔(張展)에게 '공중소란' 혐의를 적용해 징역 4년형을 선고했다.

이런 가운데 돌아온 우한 봉쇄 1주년은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날일 수밖에 없다.
마침 세계보건기구(WHO)가 조직한 국제 전문가들이 중국에서 코로나19 기원 문제 조사를 본격적으로 돌입할 예정이어서 '코로나19 기원'을 둘러싼 관심이 다시 고조될 수 있는 시점이다. 또 허베이성 등 북부를 중심으로 최근 들어 코로나19 재확산 추세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중국 전역에서 우한 봉쇄 1주년 회고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중국은 우한 봉쇄 1주년을 앞두고 자국 내 여론 통제를 부쩍 강화하는 추세다.
중국 내 '요주의 인물'들의 대외 발언도 금지된 상태다.
코로나19 환자 발생 사실을 처음으로 리원량 등 병원 의사들에게 공유한 우한중심병원 응급실 주임 아이펀(艾芬) 의사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지만 그는 "외국 매체와 인터뷰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통보를 여러 차례 받은 상태"라면서 인터뷰에 응하기 어렵다고 했다.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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