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반정부시위 그치니 보복?…태국, 왕실모독죄 칼 빼들어
시위대 40여명 적용→최장 43년형 선고→타나톤 전 야당 대표 고발…"무차별 사용"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태국 정국이 연초부터 '왕실모독죄'로 소용돌이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사태로 반정부 시위가 잠정 중단된 사이, 당국이 반정부 시위 지도부에 이어 야권 유력 인사까지 왕실모독죄로 옭아매면서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현지 언론 및 외신에 따르면 태국 정부는 전날 타나톤 중룽르앙낏 전 퓨처포워드당(FFP) 대표에 대해 소셜미디어(SNS)에서 왕실을 모독했다며 수사 기관에 고발했다.
FFP는 2019년 총선에서 제3당으로 발돋움한 뒤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오다 지난해 2월 헌법재판소에 의해 강제해산 및 지도부 정치활동 10년 금지 판결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태국 전역에서 반정부 집회가 시작됐다.
타나톤 전 대표는 지난 18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서 정부의 백신 전략 전반을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태국에서 생산하는 왕실 소유 시암 바이오사이언스사(社)를 언급했는데, 정부는 타나톤 전 대표가 허위 사실을 유포해 왕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정부 관계자는 30분 간의 페이스북 방송에서 11건의 왕실모독 사례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형법 112조에 규정된 왕실모독죄는 왕과 왕비 등 왕실 구성원은 물론 왕가의 업적을 모독하거나 왕가에 대한 부정적 묘사 등을 하는 경우 죄목 당 최고 징역 15년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왕실모독 사례가 다수이면 형량이 훨씬 더 늘어날 수도 있다.
타나톤 전 대표는 고발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아스트라제네카와 시암 바이오사이언스간 계약 세부사항을 공개할 것과, 국립백신연구원이 시암 바이오사이언스사에 얼마의 예산을 지원했는지를 밝힐 것을 촉구했다고 일간 방콕포스트는 전했다.
타나톤 전 대표는 그러면서 "법적 조치로 공격하면 공격할수록, 나의 의심은 더 명확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쁘라윳 정부의 대척점에 서 있던 타나톤 전 대표는 왕실모독죄가 적용된 가장 유력한 인사다.
이번 사례는 지난해 하반기 태국을 휩쓴 반정부 시위로 수세에 몰렸던 태국 정부가 지난해 11월부터는 왕실모독죄를 이용해 본격화한 '반격'의 연장선상으로 해석된다.
태국은 2018년부터 2년여간 이 법 조항을 적용하지 않다가 시위대가 군주제 개혁 요구를 중단하지 않자 다시 칼을 빼 들었다.
올 초까지 태국 당국이 왕실모독죄를 적용한 반정부 인사는 40명이 훌쩍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故)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 당시인 2017년 64명 이후로 최대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특히 최고 형량이 징역 15년이지만, 위법 건수가 많으면 수십 년의 징역형도 가능한 왕실모독죄를 내세워 반정부 시위대를 압박하는 전략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태국 형사법원은 지난 19일 60대 전직 여성공무원에 대해 왕실모독죄 29건을 적용, 징역 43년을 선고했다.
유죄 인정을 참작해 87년에서 절반으로 감형한 것이었지만, 왕실모독죄 관련 최고 형량이었다.
이와 관련, 쭐라롱껀대 안보 및 국제문제 연구소 티띠난 퐁수티락 소장은 AFP 통신에 "타나논 전 대표에 대한 고발은 가혹한 왕실모독죄 적용이 본격화하면서 마구잡이로 사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FFP 전 대변인으로 해산 이후 타나톤 전 대표가 만든 시민단체인 '진보운동'에서 활동 중인 빠니까 와닛도 언론에 "왕실모독죄가 현 정부의 정적들을 대상으로 공격적으로 사용되면서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음이 확실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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