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비상사태 속 이탈리아 연정 벼랑 끝 위기
중도 정당 '생동하는 이탈리아' 이탈 선언
상원 과반 무너져…팬데믹 속 조기 총선 가능성도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 이탈리아 연립정부마저 위기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연정 구성 정당인 중도 성향의 '생동하는 이탈리아'(Italia Viva·IV)를 이끄는 마테오 렌치 전 총리는 13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자청해 연정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IV 소속인 테레사 벨라노바 농업장관과 엘레나 보네티 양성평등장관도 사임했다.
렌치 전 총리는 주세페 콘테 총리를 중심으로 한 현 연정이 코로나19 사태를 비롯한 주요 이슈에 대응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민주주의 원칙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IV의 이탈로 연정은 상원에서 과반 지위를 잃게 됐다.
반체제정당 오성운동과 중도 좌파 성향의 민주당, IV 등 크게 3대 축으로 구성된 연정은 하원 629석 가운데 346석, 상원 315석 가운데 166석을 확보하고 있다.
IV가 하원 30석, 상원 18석을 보유한 점을 감안하면 하원은 불과 1석 차이로 간신히 과반이 유지되고 상원은 과반이 무너진다.
붕괴 위기를 맞은 연정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우선 콘테 총리가 사임한 뒤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의 재신임을 토대로 새로운 연정 구성에 나서는 방안이 거론된다.
연정에 대한 의회 신임 투표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중도 성향 및 무소속 의원들의 지지를 확보해 IV 공백을 메우는 시나리오다.
오성운동과 민주당이 위기관리 능력을 갖춘 새 총리를 내세워 거국 내각을 구성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다.
렌치 전 총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새 총리가 이끄는 연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문을 열어놨다.
이마저 실패하면 팬데믹 속에 여권 내 누구도 바라지 않는 의회 해산 및 조기 총선의 길로 가게 된다. 현 의회의 원래 임기는 2023년까지다.
이번 정국 위기의 표면적인 원인은 이탈리아에 할당된 2천90억 유로 규모의 유럽연합(EU) 코로나19 회복기금의 쓰임새, 유럽판 구제금융인 '유럽안정화기금'(ESM) 사용 문제 등을 놓고 누적돼온 연정 내 갈등이다.
하지만 현지 많은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렌치 전 총리의 정치적 재기와 지분 확보를 위한 노림수라는 관측이 많다.
민주당 출신인 렌치 전 총리는 2014년 39세 나이의 역대 최연소 총리직에 오르며 이탈리아 정치권에 '젊은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2016년 정치 개혁의 하나로 추진한 상원의원 수 감축 국민투표에 패한 뒤 사임했고 이후 이렇다 할 정치적 행보를 보여주지 못했다.
2019년 민주당을 탈당해 만든 IV 역시 창당 이후 줄곧 3% 안팎의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며 군소정당의 한계에 갇힌 상황이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고자 판을 크게 한번 흔들어 돌파구를 마련해보겠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실제 의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코로나19 확산의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정국 위기를 초래한 데 대한 비판론이 적지 않다.
IV가 연정 탈퇴를 선언한 데 대해 민주당 대표인 니콜라 진가레티 라치오주 주지사는 "이탈리아 국민의 뜻에 반하는 심각한 행위"라고 일갈했고, 비토 크리미 오성운동 대표도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비판했다.
반면에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극우정당 '동맹'을 포함한 우파연합은 콘테 총리의 사임과 함께 즉각적인 총선을 주장하며 역공을 취하는 모양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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