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복의 험난한 길…트럼프 '2천달러 변덕'에 곤란해진 재무장관
국민 지원금 600달러 합의 끌어내자 트럼프가 제동…"위상 너덜"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미국 의회가 약 9천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안을 통과시키고 하루 뒤인 22일(현지시간)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보도자료를 내고 축하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에 감사드린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민에게 600달러를 지급하는 자신의 제안을 골자로 몇 개월간 주도해온 험난한 협상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올린 영상을 통해 의회를 통과한 경기부양안을 '수치'라고 깎아내리며 거부권을 시사했다. 600달러를 2천달러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므누신 장관으로서는 아연실색할 얘기였다. 부양안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민주당의 압력을 어렵사리 막아내고 거둔 합의를 상관인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폄하하며 망신을 준 것이다.
4년간 충복 역할을 단단히 해온 므누신 장관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납세 내역을 공개하라는 민주당의 요구를 앞장서 막아왔고 트럼프 대통령의 문제성 발언도 대놓고 두둔하며 끝까지 곁을 지켜왔다.
므누신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협상해온 것으로만 알고 있던 의회 지도부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장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600달러를 2천달러로 늘리자며 반색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허를 찔린 공화당은 2천달러로 지원금을 확대한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자는 하원 민주당의 제안을 거부하며 곤란한 처지에 내몰렸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의원들 사이에 므누신 장관의 위상이 이제 너덜너덜해진 상태라고 전했다.
WP는 두 명의 소식통을 인용, "경기부양안 합의를 날려버릴 수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충격적 행보는 혼자만의 생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대선불복에 골몰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부양안 타결 과정과 관련한 언론 보도에서 자신이 소외된 데 대해 점점 화가 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한 소식통은 WP에 "대통령은 그저 모두에게 화가 난 것이고 의회에 가능한 한 많이 고통을 가하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WP는 므누신 장관을 깎아내리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도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 싱크탱크 맨해튼연구소의 브라이언 리들은 WP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충성과 조력은 망신으로 되돌아온다. 이게 그를 위해 일했던 많은 이들의 종말"이라며 "므누신 장관은 완전히 망신을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므누신 장관은 아직 트럼프 대통령의 곁을 지키는 몇 안되는 '충복' 중 하나다. 함께 충복으로 꼽혔던 윌리엄 바 법무장관마저 성탄절 직전에 짐을 쌌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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