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파워리더] ③ 위기마다 '엄마 리더십' 발휘한 메르켈
실용적·포용적·유연한 리더십…코로나에서도 역량 발휘
16년의 독일 역대 최장수 총리로 아름다운 퇴장 앞둬
(베를린=연합뉴스) 이 율 특파원 =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 자리의 단골로 15년째 재임 중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무티(Mutti·엄마) 리더십'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위기 속에서도 빛을 발했다.
내년 퇴장을 예고한 메르켈 총리는 '방역 모범국' 독일이 역대 최고 속도의 바이러스 확산으로 위기에 몰리자 16일(현지시간)부터 재차 전면봉쇄를 단행하기에 앞서 접촉을 줄여달라고 격정적으로 호소했다.
이어 12∼15일에는 4차례에 걸쳐 대학생과 강사, 경찰, 환자와 간병인, 견습생과 견습 지도자 등 각각 최대 15명과 온라인으로 90분씩 대화하며 코로나19가 시민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묻고 답했다.
정부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잘못하는지 솔직하게 말해달라는 게 메르켈 총리의 요청이었다.
한 치과 전공의는 메르켈 총리에게 "일반 전공의는 무료로 대학병원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는데, 치과 전공의는 코로나19 앱에 확진자라고 경고가 뜬 환자를 돌봤는데도 검사받는 데 돈을 내야 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자가 격리해야 하지 않냐'는 메르켈 총리의 질문에 치과 전공의는 "마스크를 착용한 채 계속 일하도록 요구받고 있다"면서 "마스크도 직접 사 쓴다"고 응답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에 "참 희한한 일이 다 있다"면서 문제를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일부 참가자가 "왜 학생들을 위한 코로나19 극복프로그램 승인에 행정절차가 복잡한가요?", "왜 일부 주에서는 온라인 시험이 있는데 다른 주에서는 없나요?" 등의 질문을 하자, 메르켈 총리는 "그에 대해 편지를 써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정치 노선과 관계없이 사안마다 실용적으로 접근하되, 독일 시민들의 의견에 항상 세심히 귀 기울이는 포용적이고 유연한 정치스타일, 바로 '무티 리더십'이 이처럼 코로나19에도 발휘되고 있다.
평범한 물리학자였던 메르켈 총리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1989년 옛 동독의 민주궐기(DA) 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에는 정부 대변인을 시작으로 15년 만에 사상 첫 독일 여성 총리에 오르기까지 초고속 가도를 달렸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가장 가파르게 성장한 정치 이력으로 꼽힌다.
메르켈 총리는 헬무트 콜 당시 서독 총리의 발탁으로 기독민주당(CDU) 연방하원 의원에 당선된 뒤 '콜의 소녀'로 불리며 1991년 여성청소년부 장관, 1994년 환경부 장관, 기민당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존재감을 알렸다.
이후 1999년 비자금 스캔들에 휩싸인 '정치적 아버지' 콜 전 총리에게 정계 은퇴를 요구하면서 결별했고, 권력의 공백 속에 2000년 첫 여성 당 대표로 취임했다. 이후 기민당 총리 후보로 추대되면서 2005년 독일 역사상 첫 여성 총리에 올라섰다.
이후 2009년 총선, 2013년 총선, 2017년 총선에서 내리 승리해 4차례 연임 총리에 이르렀다.
내년 10월 24일로 예정된 차기 독일 총선까지 완주하면, 역대 최장수 총리 재임 기록을 세우게 된다.
메르켈 총리는 2017년 9월 4연임에 성공했지만, 연정 구성 협상에 난항을 겪으면서 2018년 말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이후 권력 장악력이 약해지며 힘을 잃는 듯했지만, 올해 코로나19 위기가 터졌고 독일이 유럽의 방역 모범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다시 위기 속 그의 리더십이 빛나게 됐다.
메르켈 총리는 취임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3년 유럽 재정위기, 2015년 난민위기 등을 겪으면서 줄곧 위기 속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이번 코로나19 위기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내년에 역대 최장수 총리로 아름다운 퇴장을 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메르켈 총리의 후계자 지목으로 기민당 대표에 취임한 안네그라프 크람프-카렌바우어 대표가 차기 총리 후보에 불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후계 구도는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차기 총리 후보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기민당 대표 선거에는 메르켈 총리의 옛 적수인 프리드리히 메르츠 전 기민당 원내대표와 노르베르트 뢰트겐 연방하원 외교위원장, 아르민 라셰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총리가 출마한 상태다.
하지만, 세 후보 모두 기민당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지지 기반을 갖추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차기 총리 선호도 조사에서는 마르쿠스 죄더 기독사회당(CSU) 대표 겸 바이에른주 총리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기민당은 전통적으로 기사당과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왔고, 대체로 다수파인 기민당 내에서 총리 후보가 선출돼 왔다. 역대 최장수 총리를 예정해 놓은 메르켈의 그늘 탓인지 후계는 안갯속이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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