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경제도, 방역도'…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치는 영국
1차 이어 2차 봉쇄조치 돌입 결정도 실기…규정 곳곳에 '구멍'
"'상식' 따라 행동해달라"는 정부…장관도 정책 제대로 숙지 못해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영국 잉글랜드 지역은 지난 5일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차 봉쇄조치(lockdown)에 들어갔다.
잉글랜드는 영국 전체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사실상 영국 전체가 봉쇄조치의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삶은 봉쇄조치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다르다고' 했던가.
이미 한 차례 봉쇄조치를 경험한 카페와 식당은 배달 및 포장 위주 영업으로 발 빠르게 전환했고, 각 기업은 다시 재택근무 체제로 들어갔다.
지난 3월 1차 봉쇄조치 돌입 때와 달리 대규모 사재기 등의 혼란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우린 답을 곧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라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처럼 사람들은 빠르게 '뉴 노멀'(new normal)에 적응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당초 경제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할 수 있다며 2차 봉쇄조치 도입에 부정적이었다.
경제와 바이러스 억제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지역별 감염률에 따라 3단계 대응 시스템을 고집하던 영국 정부는 그러나 코로나19 재확산 속도가 빨라지자 마지 못해 4주간의 2차 봉쇄조치를 결정했다. 또다시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더 한심한 것은 봉쇄조치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점이다.
엄격하고 철저한 봉쇄조치를 하는 것도, 그렇다고 일상을 유지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당초 정부는 봉쇄조치를 발표하면서 불특정 다수 간 접촉이 발생하는 펍과 바, 식당의 영업을 중단하고 음식 포장이나 배달만 허용하기로 했다.
맥주나 와인, 사이다 등 술은 아예 포장 판매도 불허하기로 했다.
동네마다 들어서 있는 영국의 펍은 사랑방 역할을 한다. 지난 5월 1차 봉쇄조치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면서 펍의 술 포장 판매를 허용하자 인근 도로와 벤치, 공원이 금새 사람들로 북적거린 경험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를 불허하기로 했다가, 다시 봉쇄조치 돌입 직전 허용하기로 입장을 변경했다.
펍에서 보관 중인 750만 파인트(1 파인트=0.568리터)의 생맥주를 버리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업계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영국 정부가 봉쇄조치의 구체적인 내용에 면밀한 검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정부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미래를 위해 필수적이라며 1차 때와 달리 2차 봉쇄조치 기간에는 학교 문을 열어두기로 했다.
이에 아침 등교시간과 오후 하교시간에는 학생과 학부모들로 인근 도로는 북새통을 이룬다. 마스크를 쓴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초등학생들이 학교 체육시간(PE)이나 쉬는 시간, 점심 시간 등을 이용해 축구 등을 즐기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부는 그러나 학교 밖에서 열리는 각종 스포츠 클럽이나 단체 활동은 금지했다.
똑같은 아이들이 학교 담장을 사이에 두고 안에서는 스포츠를 즐겨도 되고, 밖에서는 금지되는 희한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성인은 일대일로 다른 가구 구성원 1명과만 공원 등에서 사회적 거리를 두고 만나는 것이 허용된다.
예를 들어 옆집 A씨와 만나는 것은 가능하지만 A씨 부부와 동시에 어울리는 것은 금지되는 식이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것이 목적이라면 아예 가구 간 만남을 금지하는 것이 맞다. 일부 허용할 것이라면 이를 가구 단위로 제한해야지 1명이란 숫자를 제시한 데는 아무런 합당한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정식 테니스 코트 등에서 강습을 받거나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것은 금지했지만, 정식 코트가 아닌 곳에서 테니스를 치는 것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정식 수영장은 문을 닫지만, 강과 호수 등 야외에서의 수영은 가능하다. 테니스, 골프는 금지됐지만, 낚시는 허용됐다.
정부는 물론 누구도 허용되는 것과 금지되는 것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한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정작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각 부처 장관들조차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이클 고브 영국 국무조정실장은 봉쇄조치 직전 자신의 지역구민들과의 화상회의에서 야외 골프나 테니스를 즐기는 것은 가능하다고 밝혔다가 나중에 사과 발언을 해야만 했다.
2차 봉쇄조치 도입 전 지역별 3단계 대응 시스템을 적용할 때도 허점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당시 정부는 코로나19 감염률이 심각한 '매우 높음'(very high) 지역에서는 '실질적 음식'(substantial meals)을 판매하지 않는 펍과 식당의 영업을 금지했다.
사실상 식사보다는 술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펍과 바를 특정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실질적'이라는 애매한 표현 때문에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펍과 식당이 아니라 정치인이나 기업인을 포함한 상류층이 이용하는 회원제 '클럽'(club)의 경우 영업 정지 대상인지를 놓고도 해석이 분분했다.
'매우 높음'과 '높음'(high) 지역에서는 자택은 물론 펍과 식당 등 실내에서 다른 가구와의 만남이 금지됐다.
그러나 정부는 '업무 목적'(work purposes)의 경우 예외를 뒀다. 그러면서 업무를 겸한 오찬 등의 경우 최대 30명까지 허용된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름뿐인 회사를 설립, 가족이나 친구를 종업원 명단에 올리면 정부 제한과 관계없이 얼마든지 함께 술을 마시거나 식사를 할 수 있다며 실제로 회사를 설립하는 웃지 못할 사례마저 나타났다.
마스크와 관련한 정책 유턴은 한두 번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 9월 학교 문을 다시 열 때까지 마스크 착용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개학을 불과 며칠 앞두고 갑자기 잉글랜드 지역 중등학교(세컨더리 스쿨·11세 이상 대상)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 여부를 학교들이 독자적으로 결정하도록 해 혼란을 키웠다.
이번 2차 봉쇄조치에 돌입하면서는 모든 중등학교의 복도와 공용공간에서 반드시 마스크를 쓰도록 또다시 규정을 변경했다. 여전히 교실에서는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바이러스 위험은 한결같은 상황에서 마스크 관련 영국 정부의 태도와 입장만 계속해서 바뀌는 셈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영국인의 상식'(British common sense)을 활용해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대중교통과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얼마나 지속될지를 물어도, '필수업무를 위한 출퇴근'이 무엇인지를 물어도 '영국인의 상식'에 따라 판단해달라고 말했다.
존슨 총리의 발언을 접한 한 영국 친구는 "그 영국인의 상식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말"이라고 반응했다.
'영국인의 상식'에 따라 판단해달라는 말은, 그래서 영국 정부의 주먹구구식 코로나19 대응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현이 되고 있다.
1차 봉쇄조치 도입 지연으로 유럽 내 코로나19 사망자 규모 1위라는 불명예를 덮어쓴 영국은 이번에도 시기를 놓치는 우를 범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영국 정부의 욕심은 경제와 방역 모두를 놓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주요국 지도자 중 최초로 총리의 코로나19 확진, 유럽 내 최다 사망자, 심각한 경제 손상까지…. 코로나19 앞에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던 대영제국의 영광은 정말로 옛 말이 됐다.
pdhis9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