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샵샵 아프리카] 집집마다 전기 펜스 두른 남아공
처음 분위기 '살벌' 감옥 같아…지날수록 익숙해져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주택가가 한국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 중 하나는 집집마다 웬만하면 전기 펜스가 둘러쳐져 있다는 것이다.
남아공 자체가 강력 범죄가 높은 나라로 악명 높아서 그런지 처음에 전기펜스가 둘러쳐진 집들을 보면 왠지 살벌한 느낌이 들었다. 남아공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담장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었다.
수도 프리토리아의 경우 서울은 말할 나위없고 미국 워싱턴 DC를 비교해봐도 전기펜스는 이곳에 압도적으로 많다.
거주할 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 안전상 고려해야 하는 것이 과연 전기펜스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만큼 남아공에서 전기펜스는 '범죄와 전쟁'에서 중요한 대응 수단이다.
그러나 높은 담장에 전기펜스를 두르고 바깥출입이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집 안에 있으면 갑갑증이 일고, 어떤 집은 마치 집 안에 있는 사람이 창살없는 감옥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남아공이 수개월 간의 강력한 록다운(봉쇄령)에 들어가면서 자칫 이런 '폐쇄 공포증'은 더 심각해질 수 있었다.
결국 집세가 좀 더 들더라도 가능하면 단지 안에서나마 비교적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새삼 한국의 치안 상황이 얼마나 좋은지를 단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상황이었다.
밤에도 바깥에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중요한 생활요소인 것이다.
남아공에 전기펜스가 둘러쳐지고 관련 법제화가 시작된 것은 1980년대로 당시 주로 농장에서 동물들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하네스버그 외곽 센추리온에 있는 한 전기펜스 'S'사는 역사가 50년이 넘었다고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난 5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본사는 이곳에 있고 전국적으로 지사가 27개 있다"면서 "코로나19 상황에도 현재 벌이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인도, 브라질 등에도 회사가 진출해 있다고 했다.
전력난에 '로드셰딩'(loadshedding)이라는 순환 정전이 고질적인 이 나라에 전기펜스 산업이 이렇게 번창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전기펜스 설치 비용과 전기료에 대해선 어떻게 설치하느냐에 따라 다르고 전압도 다양하며 전기료는 배터리를 활용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그렇게 비싸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전기펜스로 추가로 물게 되는 전기료는 월 15∼20 랜드(1천69원∼1천425원) 수준이라고 나온다.
집 주인도 펜스로 인한 전기료는 얼마 안 된다고 알려줬다.
그러면서 설치비용도 펜스를 몇 가닥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2년 전 알아봤을 때 미터당 30 랜드 정도였다고 말했다.
프리토리아에서 전기 펜스가 언제부터 이렇게 가가호호 생겨났느냐에 대해서는 2000년 들어서부터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남아공서 전기펜스가 집이나 사업장에 대거 설치된 건 경제중심 요하네스버그에서 범죄가 기승을 부렸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우간다에서도 오래 생활한 박종대 남아공 대사는 6일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에는 전력도 부족하고 인프라가 잘 안 돼 있어 전기펜스가 별로 없다"면서 "전기 펜스 대신 경비로 사람을 세우는 경우는 종종 있다"고 말했다.
물론 남아공에서도 전기펜스를 하는 집은 백인, 외국인, 부유한 흑인 계층 중심이고 가난한 흑인밀집 타운십에는 전기펜스가 별로 없다.
전기펜스 담장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보통 경비업체가 정문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야간 순찰까지 도는 것이 웬만한 '안전 단지'의 조건이다. 최근 남아공 은퇴자들은 노후 생활 주택으로 바로 이런 곳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렇게 해도 강도들에게 뚫리는 것을 최근 사는 단지에서 직접 목도했다.
10명이 지켜도 도둑 하나 막는 게 어렵다는 말을 실감 나게 했다.
그래도 남아공에서 생활할수록 처음에 생경하게 다가온 전기펜스도 점점 익숙한 풍경으로 다가오고 그 안에 사는 입장에선 안정감을 주는 게 사실이다.
단 전기펜스는 남아공의 큰 빈부격차--백인가구 소득이 흑인가구의 평균 5배--와 높은 범죄율, 단지 전기료만으로 계산할 수 없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 등을 상징한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흑인 차별정책)가 끝난 지 4반세기를 넘겼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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