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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중국 '항미원조' 기념전 가보니…'남침'은 쏙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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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중국 '항미원조' 기념전 가보니…'남침'은 쏙 뺐다
관람객 북적…미중 갈등 속 애국주의 고조



(베이징=연합뉴스) 김윤구 특파원 = 중국의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 70주년 기념일인 25일. 베이징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은 이날 막을 올린 항미원조 기념전을 보려는 가족 단위와 단체 관람객으로 북적거렸다.
중국은 자국군이 참전한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고 부른다.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뜻이다.
이날의 입장권 8천장은 나흘 전 일찌감치 예약이 마감됐었다. 앞서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도 전시관을 미리 찾았었다.
한 관람객에게 왜 전시를 보러왔느냐고 물었더니 "중국인이라면 당연히 와야죠"라는 답이 돌아와 머쓱해졌다. 이 관람객은 기자가 한국 언론 소속인 것을 알고는 바로 경계하는 기색을 보였다.
'위대한 승리를 깊이 새기고 평화와 정의를 수호하자'는 이름이 붙은 전시회는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결정으로 출병할 때부터 전쟁 과정과 휴전까지 5개 부분으로 나뉘었다.
전시관에서는 북한군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됐다는 내용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입구의 서언은 "평화를 사랑하는 것은 중국 민족의 전통이다. 항미원조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자가 중국 인민에게 강요한 것"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 "1950년 6월 25일 조선 내전의 발발 후 미국은 병력을 보내 무력 개입을 했고 전면전을 일으켰으며 중국 정부가 거듭 경고했는데도 38선을 넘었다"고 지적했다.
북한군의 침략은 쏙 빼놓고 이를 "내전의 발발"로만 기술한 것이다.

최근 관영 CCTV가 방영한 6부작 다큐멘터리 '평화를 위해'에서 "1950년 6월 25일 조선 내전이 발발했다. 미국 정부는 바로 다음 날 무력 개입을 결정했다"고 묘사한 것과 일치한다.
많은 중국인이 북한의 남침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하고 미국의 개입에 정당하게 대응한 것이라고 배우기 때문에 인식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관에는 북한 김일성이 1950년 10월 1일 마오쩌둥에게 한국어와 중국어로 중국의 참전을 요청한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김일성은 "엄중하고 위급한 형편"이라면서 "중국 인민의 직접 출동"을 요청했다.
10월 8일 마오쩌둥이 김일성에게 중국 정부가 출병을 결정했다고 통보한 자료도 전시됐다. 전시 도입부는 참전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어 당시의 무기와 군복 등 전시물을 둘러보다 보니 '197653'이라는 숫자가 큼지막하게 박힌 조각상이 나타났다.
항미원조전쟁에서 사망한 중국군의 숫자다. 이날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微博)에서는 '#항미원조전쟁에서 순국한 19만7천653명의 열사#'라는 해시태그가 1억8천만건의 조회 수를 올렸다.
상감령 전투(저격능선전투)나 장진호 전투 등 중국이 대승했다고 선전하는 전투는 눈에 잘 띄게 전시했다.
항미원조전쟁의 전과로는 71만여명의 적군 피해(사망·부상·포로) 등을 표로 보여줬지만 중국인민지원군의 피해는 20만명에 가까운 사망자 수 외에는 제시하지 않았다.

중국은 미중 갈등 속에 애국주의를 고취해 인민을 결집하는데 항미원조 전쟁을 활용하고 있다.
이날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은 이번 전시를 애국주의 교육의 기회로 이용했다.
한 어머니는 어린 딸에게 "죽었다고 하는 게 아니라 희생됐다고 하는 거야"라고 가르쳐주기도 했다.
우모씨와 아내는 '소년선봉대'에 막 가입해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두른 초등학생 2학년 아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느라 열심이었다.
우씨는 "미중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 애국주의 교육 차원에서 아들에게 전시를 보여주려고 왔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그는 "TV에서 매일 미국이 중국을 괴롭힌다는 걸 아들이 본다. 현장에서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전시장 곳곳에 있는 게시물과 마오쩌둥과 시진핑의 관련 어록 등이 애국심을 고취하는 역할을 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로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고 중국인들의 자부심을 북돋운다.
시진핑 주석이 계승해야 한다고 외친 항미원조 정신은 "조국과 인민의 이익을 무엇보다 높이 두고 조국과 민족의 존엄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애국주의 정신"이라고 나와 있다.

이날 관람객은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를 제외하면 중년과 노년층 위주였다.
훈장을 달고 경례하는 자세로 포즈를 취하는 참전군인 주변에는 다른 관람객들이 몰려들었다. 올해 92세인 웨이창룽은 부대원 약 200명 가운데 살아 돌아온 사람이 70명밖에 안 된다고 가족을 통해 말했다. 그는 동상에 걸려 귀국했다가 다시 전쟁터로 나갔다고 했다.
IT 분야에서 일한다는 자오씨는 '항미원조전쟁'의 의미에 대해 "중국의 발전에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었다. 출병하지 않았으면 남북이 통일되고 한국은 미국이 중국을 위협하는 기지가 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의 침략에 관해 묻자 "한국이 보기에는 침략이라 하겠지만 김일성은 통일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고 중국은 이를 도와준 것"이라고 정당화했다.
y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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