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 좀 받아줘요"…홍콩·대만 '정치싸움'에 멀어진 살인단죄
'송환법 시위' 촉발 홍콩인 살인 용의자, 자수하고 싶어도 못 하는 처지
홍콩 "개인자격 가면 돼" vs 대만 "정부협의 거쳐야만 입경"…속타는 피해자 가족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애인 살해 혐의를 받는 홍콩인이 범행 장소인 대만에 가 자수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피력했다.
그런데도 홍콩과 대만 정부의 정치적 대립 탓에 정작 이 용의자의 대만행이 막히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만 측이 홍콩과 정부 간 협의를 통해서만 용의자 신병을 넘겨받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홍콩 측은 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 단죄가 한없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16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중앙통신사 등 홍콩과 대만 언론에 따르면 여자친구 살인 용의자인 홍콩인 찬퉁카이(陳同佳·21)는 지난 14일 대만 검찰에 자수 의사를 밝히면서 대만 입경 비자를 신청했다.
찬퉁카이는 2018년 2월 여자친구와 대만 여행을 떠났다가 현지에서 임신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돌아온 혐의를 받는 인물이다.
대만 당국은 홍콩 당국과 공식 협력 형식을 취하지 않으면 찬퉁카이의 입경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홍콩 정부는 이런 요구를 일축하며 찬퉁카이가 개인 자격으로 대만에 가면 될 일이라면서 대만 정부를 상대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추추이정(邱垂正) 대만 대륙위원회 대변인은 15일 기자회견에서 "대만과 홍콩 쌍방의 (사법) 관할권과 공권력 사용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먼저 양측이 관련 문제를 잘 논의하고 나서야 찬퉁카이의 대만 입경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이래야만 용의자가 공평한 심판과 사법적 단죄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홍콩 정부 대변인은 "찬퉁카이의 자수 문제와 범죄 문제 협의를 돕는 메커니즘이 존재하는지의 문제는 별개의 사안인데도 대만이 이번 사안을 정치적으로 다루고 있다"며 "(대만의) 요청과 관련해 상호 사법 공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사실 이번 갈등은 홍콩과 대만 간, 나아가 중국과 대만 간의 정치적 싸움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과 중국의 특별행정구인 홍콩은 대만을 수복되지 않은 중국의 한 지방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대만이 요구하는 것처럼 정부 간 접촉을 통해 범죄 용의자를 넘겨주는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반대로 대만 정부는 찬퉁카이 인도를 계기로 대만에 독자적인 사법 주권을 보유한 정부가 있다는 사실을 안팎에 알리고 싶어한다.
따라서 겉으로는 원칙과 원칙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상은 대만과 홍콩 모두 사법 정의 실현은 뒷전에 둔 채 철저히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번과 같은 논란은 작년 10월에도 있었다.
여자친구의 돈을 훔친 혐의로만 징역을 살던 찬퉁카이가 당시 출소 직후 곧바로 대만에 가 자수하겠다면서 비행기표까지 샀지만 홍콩과 대만 정부 간 갈등으로 대만에 갈 길이 막막해지면서 자수를 '연기'한 바 있다.
홍콩은 속지주의를 채택해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대만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수사해 기소하지 못한다.
여자친구 시신을 대만에 두고 혼자 돌아온 그는 홍콩에서 여자친구의 돈을 훔친 혐의로만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작년 10월 출소한 그는 현재 법적으로는 '자유인'의 상태다.
이처럼 사법 단죄가 지연되면서 피해자 유족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다.
피해자 부모는 전날 성명을 내고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는 우리가 오늘까지 버틸 수 있던 유일한 이유였다"며 "홍콩 정부와의 이견을 제쳐두고 대만 당국이 절차를 단순화함으로써 찬퉁카이가 조속히 자수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정중히 요청한다"고 호소했다.
홍콩 정부는 작년 살인 용의자인 찬퉁카이를 대만에 넘겨 단죄를 받게 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법안에 범죄자를 중국 본토에까지 넘길 수 있다는 내용이 함께 포함되면서 홍콩 시민들의 광범위한 저항이 일어났고, 이후 전면적인 반중·민주화 성격의 시위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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