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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격앙된 태국 시위현장 "쁘라윳 억빠이…퇴진때까지 안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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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격앙된 태국 시위현장 "쁘라윳 억빠이…퇴진때까지 안떠나"
반정부 시위대 2만명, 바리케이드-버스 차벽 '뚫고' 총리청사로
"쁘라윳은 독재자·거짓말쟁이"…민감한 군주제 질문엔 손사래도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쁘라윳, 억빠이"(쁘라윳, 퇴진하라)
지난 14일 오후 태국 방콕 도심 랏차담넌 거리에 울려 퍼진 구호다.
반정부 집회 참석자들은 오전부터 시시각각 민주주의 기념탑이 있는 랏차담넌 거리로 몰려들었다.
애초 집회 시각으로 공지된 오후 2시(현지시간)를 넘어서면서는 참여 인원이 어림잡아 2만명 안팎은 돼 보였다.
집회 지도부가 공언한 행진을 저지하기 위해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집무하는 총리실로 향하는 길목들은 이미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막고 있었다.
일부 길목에는 바리케이드-경찰-그리고 경찰 버스 '차벽'이 3중 막을 치고 있었다.



집회 장소 인근 도로 한쪽에는 노란색 상의를 입은 왕실 지지파들이 길게 늘어앉아 있었다.
외부 사원에서 있을 종교 행사에 참석이 예정돼 있던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 차량 행렬을 기다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반정부 집회에 대응하는 성격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날 오전에는 일부 반정부 집회 참석자들과 왕실 지지파간 '소규모' 충돌도 발생한 터였지만, 오후에는 '각자의 구역'을 지키는 분위기인 듯했다.
도로 안쪽으로 들어서니 집회 참석자들의 긴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직업도 연령대도 다양해 보였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나 대학교 학생부터 오토바이 기사 표시인 조끼를 입은 이들은 물론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세력인 이른바 '레드 셔츠'들도 보였다.
10대에서부터 70대 안팎으로 보이는 노년층도 적지 않았다.
3중 막에 막힌 집회 참석자들이 도로에 앉아 지도부 발언을 듣는 동안 한 여학생을 만났다.
아리(가명·16)라는 이름의 이 학생은 현재 고교를 졸업한 상태라고 말했다.
집회에 참석한 이유를 묻자 "쁘라윳 짠오차 총리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쁘라윳 총리는 국민들의 낸 세금을 가지고 국민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국왕만을 위해 사용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리는 군주제 개혁에 대한 질문에는 "부모님을 비롯해 태국의 많은 연세 드신 분들은 군주제를 존경하는 것 같다"면서도 "나와 친구들 그리고 대부분의 10대는 생각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가 태국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반정부 집회 기사를 썼다고 말하자 최근 고등학교 조회 시간에 학생들이 '세 손가락 경례'를 한 일도 알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세 손가락 경례는 태국 민주세력 사이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통용되는 제스처다.
아리와 함께 걸어 지도부 차량 중 한 곳에 다다르자 교복을 입은 그의 친구 프라디(가명·16)를 만날 수 있었다.
프라디는 이날 오전부터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학교에 가지 않았거나, 학교에 갔더라도 조퇴한 듯했다.
아리는 친구에 대해 "반정부 집회에 매우 열성적"이라고 귀띔했다.
주변에는 프라디와 비슷한 또래의 고교생들로 보이는 이들이 몇 명 더 보였다.



집회 맨 앞줄로 발걸음을 옮겼다. 3중 방어막이 굳건했다. 지도부로 보이는 한 여성이 경찰 관계자들과 계속해서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마도 길을 터달라는 것 같았다.
이 와중에 일부 흥분한 참석자가 경찰들을 향해 달려가려 했지만, 자원봉사자들이 제지했다.
집회 주최측은 혹시나 있을 불상사를 막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을 구성해 안전을 관리했다. 폭력 사태가 발생할 경우, 정부 당국에 탄압의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 측이나 왕당파 측에서 불순한 의도로 의도적으로 폭력 사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자원봉사자들은 까만 헬멧에 왼쪽 팔에는 노란 형광 밴드를 찼다. 지도부 지시에 따라 팔짱을 끼고 집회 참석자들이 섣불리 앞으로 나서는 것을 막기도 했다.
바닥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중간중간 '운동 가요'가 울려 퍼지며 집회 참석자들을 독려했다.



오후 6시께 1차 저지선이 '열렸다'. 경찰이 협의 끝에 바리케이드를 열어준 것이다.
맨 앞에서 오토바이가 경적을 울리며 행진에 나섰다. 거대한 인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탄 한 여성이 맹렬하게 구호를 외치며 나아갔다. "쁘라윳, 억빠이"라는 구호에 다른 참석자들도 호응했다. 억빠이는 태국어로 '나가라'는 뜻이다.
누군가 엉거주춤 물러선 경찰 머리에서 베레모를 빼앗아 뒤로 던졌다. 이 베레모는 계속 공중에서 뒤쪽으로 전달됐다.
총리실 건물이 눈에 들어오자 분위기는 더 고조됐다.



경찰은 차량과 바리케이드를 이용해 길목을 막았지만, 길이 열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많은 참석자가 몰린 만큼,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였다.
이후 참석자들은 총리 청사 주위를 감쌌다. 그리고 바닥에 앉았고, 집회 지도부는 발언을 시작했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한 남성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수폰씨는 올해 70세의 은퇴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집회에 참석한 이유를 묻자 "쁘라윳 총리는 독재자(dictator)다. 많은 태국인은 독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너무 많이 (국민을) 속였다"면서 "세금 등을 포함해 모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수폰씨는 군주제 개혁에 대해서는 "미안하다, 군주제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내 관심사는 오직 쁘라윳"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2006년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한다는 그는 이에 대해 "군주제는 헌법에 규정돼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입헌군주국인 태국의 헌법에 '군주는 존경받아야 하고 (권위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밤이 깊어갈 무렵 한 대학생을 만났다.
태국 유명 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이라는 앙앙(가명·20)씨는 쁘라윳 총리에 대해 "지난해 총선도 문제가 있었지만, 집권 이후 2년이 다 돼가는데 아무것도 한 게 없다"며 혹평했다.
앙앙씨는 군주제 개혁 요구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는 이야기하지 않지만, 친구들끼리는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인터넷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에둘러 얘기했다.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던 그는 기자가 사진 촬영을 요청하면서 군주제 언급 등이 자칫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하자 얼굴 대신 뒷모습만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태국 형법에는 왕가에 대한 부정적 묘사 등을 금지한 왕실모독죄가 규정돼 있다.
왕실모독죄 위반 시 최장 15년까지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태국 내에서 군주제 개혁은 그만큼 민감한 사안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오후 9시가 되면서 적지 않은 참석자가 집회장을 떠났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총리실 주변에 남아있었다. 어떤 이는 아예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맞은편 교육부 건물로 향하는 길목의 바리케이드 뒤편으로 시위진압용 헬멧을 착용한 경찰들이 이동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지도부는 트럭에서 확성기로 외쳤다. "쁘라윳 퇴진 전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
다음날인 15일 새벽 태국 정부는 5인 이상 집회를 금지하는 비상조치를 발효했다.
태국 반정부 집회의 향방에 중요한 갈림길이 된 현장이었다.





sout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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