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수난당하는 콜럼버스, 출신국 이탈리아선 여전히 '위인'
미국선 반(反)인종차별 분위기 속 제국주의 측면 재조명…이탈리아선 영웅 추앙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기자 = 올여름부터 전국적으로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이어지는 미국에선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업적을 둘러싼 논쟁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 토착민을 착취하고 노예로 삼아 유럽의 제국주의적 식민통치의 틀을 마련했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태생지인 이탈리아에선 그는 여전히 위인으로 칭송받는다고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11일(현지시간) 전했다.
현재 미국에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날을 기념하는 '콜럼버스의 날'의 존속 여부에 대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일각에선 매해 10월 둘째 월요일이자 연방 공휴일인 이날을 폐지하거나, '원주민의 날'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6월 리치먼드에선 시위대가 콜럼버스 동상을 무너뜨려 호수에 던져버린 후 그 자리에 "콜럼버스는 집단학살을 대표하는 자"라고 쓰인 표지를 세우기도 했다.
WP는 그러나 이탈리아에선 콜럼버스에 대한 재평가가 대체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이탈리아인들은 콜럼버스를 자신들의 최고 자질인 독창성, 용기, 회복력의 집합체로 여긴다"고 지적했다. 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이다.
이탈리아 최대 백과사전인 '트레카니'에도 콜럼버스는 "위대한 항해사이자 미국을 발견한 자"로 정의돼 있다. 이런 평가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고 WP는 설명했다.
이탈리아가 통일국가가 된 19세기 중반,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콜럼버스 신화'가 이용됐다는 것이다.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현재까지 원주민 학살 등 콜럼버스의 부정적 측면은 잘 조명되지 않고 있다.
최근 은퇴한 로마의 한 역사 교사는 WP에 "최근에서야 학교에서 콜럼버스의 식민주의적 잔혹함이 다뤄지고 있다"면서도 "이탈리아의 긴 역사 전체를 교육하기엔 학사 일정이 너무 짧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인들이 콜럼버스에 대한 재평가를 주저하는 것은 그에 대한 비판을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탓도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콜럼버스 동상이 훼손되자 이탈리아인 다수가 불쾌감을 드러냈다.
당시 현지 일간 '일 조르날레'에는 "콜럼버스는 사후 500년이나 지났는데 모욕당하고 있다. 그의 동상을 파괴하고 그에 관한 기억을 없애서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선적이고 틀렸다"는 내용의 칼럼이 게재되기도 했다.
또 이탈리아인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콜럼버스에게서 손을 떼라'(#HandsOffColumbus)는 해시태그가 확산하기도 했다.
yo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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