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백신 사업 중단…"저가 입찰이 영향" vs "단가 문제 아냐"
김진문 신성약품 대표 "궁극적으로 우리 잘못…일정 빠듯했던 건 사실"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계승현 기자 = 정부가 독감 백신의 유통상 문제로 22일 시행할 예정이었던 일부 무료 접종사업을 중단하면서 사태의 근본적 원인을 놓고 업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가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고수하는 탓에 경험도 없는 업체가 유통을 맡았기 때문이라는 견해와 단순히 단가 문제로 얘기하는 건 결과론적인 진단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 올해 '첫' 조달 신성약품…거듭된 유찰에 검찰 조사까지 겹쳐 낙찰
애초 이 사태는 국가 백신 사업에 조달을 맡은 신성약품이 독감 백신을 유통하는 과정에서 일부 물량을 상온에 노출하는 등의 관리 미숙으로 빚어졌다.
신성약품은 올해 처음으로 정부와 백신 조달 계약을 맺은 업체라는 사실이 알려졌는데, 이를 두고 무조건적인 저가 입찰이 초래한 결과라고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국가예방접종사업은 조달청이 백신 조달 공고를 내면 의약품 유통사와 같은 도매업체가 입찰에 참여해 낙찰하면 이 회사가 제조사로부터 백신을 주문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애초 입찰에서 2순위였던 신성약품이 최종 독감 백신 유통사로 결정된 데에는 '검찰 조사'라는 특수한 배경이 있었다.
그간 백신을 조달했던 업체들이 '입찰방해'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바람에 제조사로부터 백신 공급 확약서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사정이 생겼고, 제조사 대부분으로부터 확약을 받은 신성약품이 당시 질병관리본부로부터 계약을 따냈다.
신성약품이 낙찰되기까지 네 차례 유찰됐는데, 이 과정에서 시일이 촉박해지면서 독감 백신 유통을 위한 준비가 부족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올해 독감 백신 입찰을 시작한 것은 6월 말이지만, 단가 문제 등으로 유찰되다 최종 계약은 8월 말에야 이뤄졌다.
김진문 신성약품 대표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배송업체가 잘못했어도 궁극적으로 우리의 잘못"이라면서도 "입찰 후 전국에 배송해야 하니까 일정이 빠듯하고 촉박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 "가격 맞춰줬다면 유경험 업체가 했을 것" vs "가격 때문이라는 건 지나쳐"
이처럼 수차례 유찰된 데에는 정부가 제시한 가격이 업계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기존 업체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보니 경험이 없던 신성약품이 낙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A 백신업체 관계자는 "가격이 맞지 않아 유찰이 많이 되는 건 사실이기도 하고, 그래서 신성약품으로 넘어간 것도 있을 것"이라며 "정부도 예산의 한계가 있겠지만 어느 정도 (가격을) 맞춰줬다면 기존 업체가 들어갈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성약품의 경우 처음 입찰에 들어와 낙찰을 받은 업체다 보니 미숙한 부분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결과론적이지만 경험이 있는 업체가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도 "유료 백신의 병원 납품가가 1만4천원 정도 되는데 질병관리청이 무료 백신 단가를 8천620원으로 지나치게 낮게 책정해 건실하고 검증된 업체들이 입찰에 적극 참여하지 않은 구조적 문제가 있다"며 "국민 생명을 담보하는 치료제나 백신은 적정한 가격을 맞춰줘 안전하게 유통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신성약품은 이번 사태와 낮은 단가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김 대표는 "제약회사들은 낮은 단가라고 얘기하겠지만 그것과는 관계가 없다"며 "우리를 포함해 여섯 군데가 같은 가격으로 낙찰받았는데, 그중 제약회사에서 백신을 주겠다는 공급확약서를 받은 곳이 우리뿐이었다"고 설명했다.
즉, 신성약품이 단순히 저가를 내세운 덕에 낙찰을 받은 건 아니라는 의미다. 오히려 신성약품이 낙찰된 데에는 기존에 백신 유통을 하던 여러 회사가 담합으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었던 영향이 더 컸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다른 B 백신업체 관계자 역시 백신 조달에 참여하겠다는 업체가 선정돼 정상적으로 공급됐으므로 저가 입찰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가격탓에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는 건 지나친 논리 비약"이라며 "유찰이 있긴 했지만 결국 낙찰됐으므로 백신 제조사들이 참여하기로 하는 등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가격 문제로) 낙찰이 늦어졌다고 해서 유통상의 과오가 합리화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특히 올해는 담합 등 검찰 조사로 인해 공급확약서를 받을 수 있는 자격 업체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신성약품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사상 초유의 독감 백신 무료접종 사업 중단을 놓고 업계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질병관리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문제가 된 독감백신에 대한 품질 검증 작업에 돌입할 방침이다. 품질 검증에는 약 2주가량 소요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가 백신 사업 전반을 돌이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성약품 뿐만 아니라 다른 업체에서도 냉장 배송 등의 원칙을 준수하지 않은 채 백신을 수송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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