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장인에 단도 날린 조명하 의사 사진 대만서 발견
1920년대 타이중 거리 사진서 우연히 포착돼…한국 학자가 찾아내
후손 "사진 몇 장 없었는데 네번째 사진 발견돼 다행"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일제강점기인 1928년 대만에서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장인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 육군 대장 척살에 나서 일본을 충격에 빠뜨린 조명하(1905∼1928년) 의사가 거리에 선 모습이 찍힌 희귀한 사진이 대만에서 발견됐다.
조명하의사연구회장인 김상호 대만 슈핑(修平)과기대 교수는 22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1928년 의거 직전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 의사의 사진을 새로 찾았다면서 해당 사진을 연합뉴스에 공개했다.
1920년대 대만 타이중(台中)시의 번화가인 지광(繼光)거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대만의 개인 사료 수집가인 린위팡(林于昉)씨가 소장 중이다.
사진 속 거리 왼편에는 조 의사가 1928년 5월 의거 당시 일하던 찻집인 부귀원(富貴圓)이 자리 잡고 있는데 가게 바로 앞에 조 의사로 보이는 인물이 자전거를 세워둔 채 서 있다.
김 교수는 "당시 거리 모습을 담은 사진 자료들을 조사하던 중 부귀원 근무복을 입은 청년이 서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에서 시선이 멈췄다"고 말했다.
김 교수를 비롯한 조명하연구회회원들과 유족인 장손 조경환씨는 비록 사진 속 인물이 작게 등장하지만 인상착의에 비춰볼 때 조 의사의 모습이 맞는다고 판단했다.
사진 속 청년은 조 의사가 의거 후 체포 당시 입었던 옷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또 짧은 머리와 비교적 작은 키 등 신체적 특징도 조 의사의 다른 모습과 일치했다.
이 사진은 조 의사가 부귀원에서 일한 1927년 11월부터 1928년 5월 거사 전 사이 기간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독립운동 조직에 속하지 않고 '단독 의거'에 나선 조 의사는 사진과 서한 등 자신의 삶에 관한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은 독립운동가였다. 따라서 그의 모습을 담은 추가 사진 발견에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간 우리 학계에서 발견한 조 의사의 사진은 모두 세 장에 불과했다. 이번 사진 발견으로 조 의사의 사진은 총 네 장으로 늘어나게 됐다.
조경환씨는 "(대만에 계실) 당시 한 달에 한 번 정도 황해도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셨던 할아버지는 거사 후 피해가 갈 것을 걱정해 편지를 읽어보고 다 태우라고 했을 정도로 자신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 해 사진도 몇 장 없었다"며 "네 번째 사진이 발견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조 의사의 사진은 독립운동가가 거사 직전 스스로 촬영해 남기거나 체포 후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찍힌 사진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독립운동 관련 사료로서 가치를 지닌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마치 1920년대 대만 타이중 '로드뷰'에서 청년 조명하의 모습이 우연히 발견된 것과 같은 일인 셈이다.
한편, 김 교수는 타이중 일대 현장 조사 과정에서 조 의사가 일했던 찻집 부귀원의 위치가 예전에 한국에서 알려진 것처럼 타이중시 지광제(繼光街) 10호가 아니라 66호임을 새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 의사는 1928년 5월 14일 삼엄한 경비를 뚫고 독을 바른 단도를 들고 타이중시 도로에서 자동차를 타고 지나던 구니노미야 대장을 급습했다.
일본 경찰과 검찰은 조 의사가 경호관에게 가로막히자 던진 단도가 구니노미야를 맞히지는 못했다고 발표했지만 구니노미야는 이듬해 1월 복막염으로 사망했다.
구니노미야는 일본이 신성시하던 이른바 '황족'의 일원으로 당시 일왕의 장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 군부와 정계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실력자였다는 점에서 조 의사의 '타이중 의거'는 일제에 큰 충격을 안겼다.
조 의사는 거사 직후 체포돼 그해 10월 10일 타이베이형무소 사형장에서 스물셋의 나이로 순국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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