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 또 발목잡힌 아베, 지지율 추락 속 '조기사퇴' 선택
1, 2차 모두 궤양성 대장염으로 하차…장기 집권 피로감도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일본 역사상 최장기 총리 재임 기록을 달성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돌연한 사의 표명이 13년 전의 데자뷔처럼 28일 현실화했다.
아베 총리는 1차 집권기인 2007년 9월 12일 오후 2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내각 총리대신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당시 그가 밝힌 주된 사임 이유는 건강 문제였다.
고교 시절인 17세부터 앓아온 궤양성 대장염이 악화해 더는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며 재임 366일 만에 총리직을 내놓았다.
임기 1년여를 남겨 놓고 다시 사의를 밝힌 이번에도 궤양성 대장염 재발이 주된 이유로 알려졌다.
일본 최대 주간지인 '슈칸분슌'(週刊文春)은 27일 자 최신호에서 아베 총리의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이 악화해 투석의 일종인 '과립공흡착제거요법'(GCAP) 시술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주간지인 '선데이 마이니치(每日)'는 아베 총리가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이 악화해 암 검사도 받았다는 자민당 관계자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난치병인 궤양성 대장염은 증상이 호전돼도 재차 악화하는 경우가 많고, 약으로 완전히 치료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 총리는 다행히 신약인 '펜타사'(일반명 메살라진)를 장에 주입하는 요 법으로 효험을 보아 2012년 12월 재집권에 이르렀다.
그러나 집권 8년 차에 엄습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스트레스와 과로가 겹치면서 이 지병이 다시 도진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의 정치 맹우(盟友)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최근 취재진에게 아베 총리가 올 1월 26일부터 6월 20일까지 '147일간' 하루도 휴일처럼 쉬지 못했다면서 몸 상태가 나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건강 이상설은 여름 휴가 기간인 지난 17일 수면 위로 본격적으로 떠올랐다.
지난 6월 13일 게이오(慶應)대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은 지 한 달여 만에 재검진을 받고, 또 1주일 만에 게이오대 병원을 찾았다.
두 차례의 재검진 중 병원에 머문 시간은 각각 7시간 30분과 3시 30분가량이었다.
올 정기 검진에 이은 2차례의 재검진은 지난 4일 발매된 주간지 '플래시'가 7월 6일 관저 내 집무실에서 아베 총리가 토혈(吐血·피를 토함)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한 것과 맞물려 건강이상설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2차 재검을 받은 뒤에도 "컨디션 관리에 만전을 기해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며 조기 사퇴론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병증이 총리직을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는 이어졌다.
아베 총리는 지난 16~18일 여름 휴가를 끝내고 19일 업무에 복귀한 후로도 평일 오전을 사저에서 보내고 오후에 관저로 출근하는 일이 많았다.
이에 대해 총리실 측은 코로나19 대처 등으로 지친 아베 총리가 휴식을 취하면서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건강 이상에 따른 조기 사퇴설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올 정기 검진 이후 두 번째로 병원을 찾은 지난 24일 연속 재임일수 2천799일을 달성해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1901∼1975) 전 총리의 기존 최장 기록(2천798일)을 넘어섰다.
그는 이 기록을 달성한 지 나흘 만에 중도 하차하는 길을 택했다.
NHK는 아베 총리가 지병이 악화한 점을 들어 국정에 차질이 빚어지는 사태는 피하기 위해 사임 의향을 굳혔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가 전격 사임 카드를 선택한 데는 지병이 악화한 상황에서 지지율 하락으로 국정을 원활히 수행하기가 어려운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각종 여론 조사에서 코로나19 대응 부실과 본인 및 측근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은 영향으로 아베 내각 지지율은 2차 집권 이후 최악 수준으로 추락한 상황이다.
교도통신이 가장 최근인 지난 22∼23일 실시한 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36.0%로 2012년 12월 2차 집권 시작 이후 두 번째로 낮았다.
아베 내각을 지지한다는 응답자 가운데도 아베 총리를 신뢰한다는 비율이 13.6%에 그쳐 7년 넘게 이어진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과 잇단 실정에 등을 돌리는 유권자가 많아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와 관련, 아베 내각에서 방위상을 지낸 나카타니 겐(中谷元) 자민당 중의원 의원은 교도통신 인터뷰에서 "너무 길어서 국민이 완전히 질리고 있다. 총리관저가 무엇을 해도 반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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