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중해 화약고 되나…나토동맹 터키-그리스 일촉즉발
천연가스·석유 둘러싼 묵은 갈등 악화
프랑스·UAE가 그리스 밀자 터키 확전
"EU·중동·북아프리카 아우른 지정학 전쟁터"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 안보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소속이지만 오랜 갈등을 겪어온 그리스와 터키의 군사 대립 가능성이 커지면서 동지중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CNN방송 등에 따르면 터키와 그리스는 가스와 석유 개발을 둘러싼 경쟁이 점점 악화하는 가운데 25일(현지시간) 동지중해에 각각 군함을 투입해 세력을 과시했다.
◇ 자원탐사선 앞세워 동지중해 해군력 동원
동지중해의 긴장은 터키가 이번 주 초 끝내기로 했던 천연가스 발굴을 위한 지진탐사 임무 수행 기간 연장을 발표하면서 고조됐다.
탐사선은 군함을 동반하고 있으며, 터키 국방부는 이에 더해 동지중해에서 해상훈련을 하겠다고 공지했다.
터키 국방부는 트위터에 "터키와 동맹국의 군함은 25일 동지중해에서 협동능력과 상호가동성 향상을 위해 해상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2010년 지질조사결과에 따르면 동지중해 레반트 유역에는 17억 배럴의 석유와 122조 큐빅피트(cf)의 천연가스가 매장돼있다.
그리스는 터키의 가스 탐사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스는 터키의 해상훈련에 대응해 같은 해역에서 해상훈련을 하겠다고 공지했다.
스텔리오스 페트사스 그리스 정부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그리스는 외교 또는 작전상 모두 조용히 대응할 것"이라며 "우리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그리스의 대응이 "제멋대로"라고 평가하면서 "인근 지역 선박의 항해 안전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금으로서는 지역 내 사태가 부정적으로 전개된다면 그리스에 유일한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 동맹국 쇼다운 조짐에 독일 "진정하라" 고군분투
나토 동맹국들이 이처럼 대립하는 상황에서 독일은 갈등이 지역 전체로 번지는 사태를 막으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이날 그리스 아테네와 터키 앙카라를 방문해 현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마스 장관은 출발에 앞서 트위터에 "그리스와 터키 간 대화의 창이 더 넓게 열려야 한다"면서 "서로 새로 도발하기보다는 진정하고, 직접적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조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그리스와 터키 간 합의를 끌어내려던 독일의 노력은 실패했다.
터키는 그리스와 협상하는 동안 가스 탐사를 중단했다.
그러나 그리스가 터키를 무시한 채 이집트와 지중해 배타적 경제수역(EEZ) 획정에 이달 초 합의하면서 협상은 결렬됐다.
크게 반발한 터키는 동지중해에서 탐사를 이어가고 있다.
파티 돈메즈 터키 에너지장관은 "우리 해저굴착선은 계획대로 작전을 수행하고 있고, 이는 국제법상 견고하다"면서 "그리스는 정당해 보이기 위해 다른 국가와 패거리를 짓는데, 이는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돈메즈의 이 같은 발언은 유럽연합(EU) 소속인 그리스가 프랑스나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지지를 얻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 패싸움 양상…"EU·중둥·북아프리카 아우른 지정학 전쟁터"
프랑스는 그리스와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터키에 대응해 동지중해상 주둔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프랑스는 그리스의 섬 크레타에 이달 중순 전투기와 전함을 보내기도 했다.
앞바다에 천연가스를 품은 동지중해의 키프로스를 둘러싼 그리스와 터키의 분쟁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키프로스는 남쪽의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EU 회원국 키프로스 공화국과, 터키만 인정하는 북쪽의 터키공화국으로 분단돼 있다.
마이클 탄첨 오스트리아 유럽안보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키프로스 앞바다의 천연가스 자원이 지난 5년간 동지중해의 모든 것을 바꿨다"라면서 "EU와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을 아우르는 지정학적 전쟁터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탄첨 위원은 "프랑스와 UAE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터키와 경쟁하고 있다"면서 "프랑스와 UAE가 터키가 국익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보는 지역에서 터키를 압박하자 충격을 받은 터키가 확전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 이달 그리스와 터키의 전함 간 충돌이 있었고, 터키가 일부 피해를 본 적이 있다"면서 "재차 사고가 나거나 계산 착오를 일으킨다면 양측간 충돌이 촉발될 가능성이 위험할 정도로 크다"고 경고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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