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연구진, 적혈구 유도 면역 반응 '플랫폼 기술' 개발
난백 알부민 코팅한 나노 입자, 적혈구에 붙여 지라 면역세포에 전달
미국 국립과학원회보 PNAS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적혈구의 주 기능은 폐의 산소를 다른 인체 기관에 배달하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 밝혀진 것이지만 적혈구는 병원체를 포박해 중화한 뒤 지라(spleen)와 간의 면역세포에 넘겨주는 일도 한다.
미국 하버드대의 '비스 생물학적 영감 공학 연구소(Wyss Institute for Biologically Inspired Engineering)' 과학자들이 적혈구의 이런 기능을 이용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플랫폼 기술을 개발했다.
간단히 말하면, 항원 단백질로 코팅된 나노 입자를 적혈구에 실어 지라(비장)의 '항원 제시 세포(APCs)'에 전달하는 기술이다.
연구팀은 EDIT(Erythrocyte-Driven Immune Targeting)로 명명된 이 신기술을 13일(현지시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논문을 통해 공개했다.
논문의 수석저자이자 비스 연구소의 핵심 과학자인 사미르 미트라고트리 교수는 "표면에 달라붙은 병원체를 면역세포에 넘겨주는 적혈구의 타고 난 기능은 비교적 최근에 발견됐다"라면서 "우리 몸의 세포를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분야에서 흥미진진한 미래 발전의 문을 열었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약물 운반체로 적혈구를 이용하는 기술은 대부분 폐에 쓰였다. 혈액이 폐의 촘촘한 모세혈관 망을 통과할 때 적혈구가 쉽게 걸러지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지라에 도달할 때까지 적혈구에서 항원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기발한 방법을 고안했다.
접착제 소재로 쓰이는 폴리스티렌 나노입자를 난백 알부민(달걀흰자의 주요 단백질)으로 코팅한 뒤 생쥐의 적혈구와 함께 배양했다.
그랬더니 적혈구 세포 하나당 최대 300개의 나노 입자가 달라붙었다.
게다가 폐 모세혈관 망과 같은 조건에서 약 80%가 떨어지지 않았고, 적혈구 표면의 PS(phosphatidyl serine) 지질 분자도 적절한 수위로 발현했다.
과학자들은 PS의 발현 수위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발현 수위가 너무 높으면 지라의 면역세포에 '나를 먹어치워'라는 신호로 읽히기 때문이다.
PS가 적절한 수위로 발현해야, 지라의 APC가 적혈구의 항원 코팅 나노 입자를 흡수하게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질적인 효능을 확인하기 위해 살아 있는 생쥐에 실험했다.
나노 입자가 달라붙은 적혈구를 주입하고 20분이 지나자 99% 이상의 입자가 혈액에서 빠져나갔는데 폐보다 지라에서 더 많이 관찰됐다.
지라에 고농도로 축적된 나노 입자는 24시간까지 그대로 유지됐지만, 혈액의 EDIT 적혈구 세포 수는 변하지 않았다.
이는 적혈구가 파괴되지 않은 채 항원을 지라로 운반했다는 걸 의미한다.
3주 동안 EDIT 항원을 주 1회 생쥐에 주입했더니, T세포 수가 무 항원 나노 입자를 주입한 생쥐의 8배, 아예 EDIT를 적용하지 않은 생쥐의 2.2배로 늘어났다.
연구팀은 EDIT 항원을 주입한 생쥐의 T세포가 난백 알부민 항원에 대한 면역 반응으로 증가했다는 걸 확인했다.
이런 생쥐는 또한 난백 알부민에 대한 혈중 항체가 대조군보다 훨씬 더 많이 생겼다.
논문의 제1 저자인 자오 쭝 밍 박사후연구원은 "근본적으로 EDIT는 보조제가 필요 없는 백신 플랫폼"이라면서 "적혈구는 수백 년 동안 안전하게 인체에 주입했기 때문에 적혈구로 면역 반응을 유도하면 백신 효과를 강화할 뿐 아니라 생산 속도도 높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cheon@yn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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