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의 게임인] '가르치려 드는 게임' 라오어2가 남긴 것들
'재미란 무엇인가' 물음 던지는 게임…악당 조작으로 불쾌감 유발
해묵은 주제 일방적 전달 아쉬워…다양성 존중한 설정은 족적
※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시리즈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게임이란 무엇인가?
게임(game)의 어원이 인도유럽어족 말로 '흥겹게 뛴다'는 뜻인 'ghem'에서 유래했다는 학설처럼, 사람들은 게임을 할 때 보통 재미를 느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재미를 느끼는 기준은 다르다. 재미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플레이스테이션4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이하 라오어2)가 게임계에서 연일 논란이다.
이 게임이 논란인 이유는 '당신에게 게임이란 무엇인가, 재미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라오어'는 동충하초 변종 균이 퍼져 인류 대다수가 죽거나 감염된 이후의 세상을 그리는 게임이다.
2013년 플스3로 발매된 1편은 무뚝뚝한 중년 남성 '조엘'이 감염 사태 속에서 딸을 잃은 뒤 냉혈한 밀수꾼으로 살다가, 당돌한 여자아이 '엘리'를 만나면서 차츰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 같은 연출, 흥미로운 액션, 여운을 남기는 결말 등으로 호평을 넘어 극찬을 받으면서 전 세계 웹진·시상식에서 총 249개의 '고티'(GOTY·Game Of The Year)를 쓸어 담았다.
반면에 이달 19일 플스4로 출시된 2편은 세계 최대 리뷰 집계 사이트 메타크리틱에서 유저 평점 10점 만점에 5점을 기록하며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라오어2를 비판하는 게이머들은 이 게임이 "플레이어를 기분 나쁘게 만든다"고 말한다.
게임이란 무엇인가.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게임이 오히려 플레이어 기분을 나쁘게 한다면, 이들에게 라오어2는 게임이 아니다.
게이머들이 라오어2에 불쾌감을 느끼는 이유를 요약하면 '게임이 가르치려 든다'는 것이다.
라오어2는 절반가량을 새로운 인물인 '애비'로 플레이해야 한다.
그런데 애비는 잔혹한 악당이다. 그는 초반부에 1편의 주인공인 조엘을 죽인다. 그것도 골프채로 무참히 때려죽인다.
이후 플레이어는 엘리를 조작해 애비에게 복수를 하러 간다. 애비의 측근을 하나하나 처치한 다음, 끝내 그를 마주한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라오어2는 플레이어에게 '다시 애비의 입장이 되어볼 것'을 강요한다.
애비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애비의 아버지가 조엘과 어떤 악연인지, 엘리가 죽인 애비의 친구들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애비는 어떤 러브 스토리가 있는지를 알게 된다.
후반부로 가면 플레이어는 애비로 엘리까지 공격해야 한다.
1편에서 조엘과 유사 부녀 관계를 맺으며 플레이어들의 눈물을 쏙 뺐던 엘리를, 2편에서 조엘을 잃고 비탄에 잠긴 엘리를 악당의 주먹으로 흠씬 두들겨 패야하는 것이다.
라오어2의 주제는 결국 '복수의 허무함과 용서'다. 라오어2는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낳으며, 마음의 안식은 결국 용서가 가져다준다는 교훈을 준다.
고대 그리스 때부터 인류가 숱한 예술 작품으로 다뤄온 식상한 주제다.
라오어2는 이 해묵은 주제를 꼭 전달하고 싶은 모양인지 플레이어에게 어떤 선택의 여지도 주지 않는다.
엘리와 애비 중 한쪽을 선택해 플레이할 수 없고, 상대방을 죽일지 말지 선택할 수도 없다. 결말은 단 하나뿐이다.
낡은 주제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데, 그 과정에서 악당까지 조작해야 하니 플레이어는 불쾌해진다.
라오어2에는 게임에 투자한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장면도 여럿 있다.
조엘이 엘리를 와이오밍 자연사 박물관에 데려가는 장면, 엘리가 트랙터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장면은 기계가 빚은 그래픽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동성애자인 엘리가 아버지나 다름없는 조엘에게 성소수자임을 어렵게 인정하면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마지막 장면도 긴 여정을 함께한 팬들의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근육질의 여군인 애비로 적을 때려눕히는 격투 액션도 참신한 쾌감을 준다. '여성 캐릭터는 남성보다 힘은 부족하지만, 더 민첩하다'는 게임계 고정관념을 부순다.
만삭의 여성이나 신체 절단 장애인이 액션에 참여하는 것도 기존 게임에서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주요 인물은 물론 조연·단역까지 성별·인종·종교 다양성을 고려한 점, 장애인 게이머를 고려해 60가지에 달하는 접근성 설정을 제공한 점은 게임 개발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라오어2의 전달 방식에 불편을 느낀 게이머들은 다양성을 존중한 설정까지도 '선민의식'이라며 힐난하고 있다.
조롱은 게임 안팎을 가리지 않는데 너티독과 라오어2는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에 집착하는 PC충', 애비는 '고릴라'라는 비난을 받고 있으며 엘리는 동성애 혐오에 시달리고 있다.
게임에서 재미를 찾지 못한 팬들이 게임 바깥에서 재미 삼아 너티독과 여성·소수자 캐릭터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란 무엇일까. 정답은 없다. 여러모로 라오어2는 게임 팬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남긴 문제작이 됐다.
[※ 편집자 주] = 게임인은 게임과 사람(人)을 다룹니다. 게임이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겠습니다. 모바일·PC·콘솔·인디 게임을 모두 살피겠습니다. 한국 게임 산업을 게임 애호가의 관점에서 바라보겠습니다. 게이머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립니다.
hy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