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차기 총리 경쟁 활발…선두 주자는 '아베 라이벌' 이시바
역사문제·한일관계 인식 '비둘기파' 분류…개헌론 강경 입장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임기 만료가 1년 남짓 남은 가운데 차기 총리를 노리는 '포스트 아베' 주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기록적으로 떨어진 가운데 여권 내에서 아베 총리와 대립해 온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
◇ 최연소 당선 세습 정치인…11선 달성·행정 경험 풍부
이시바는 건설성 사무차관, 돗토리(鳥取)현 지사, 2선 참의원, 자치상 등을 지낸 이시바 지로(石破二朗·1908∼1981)의 장남으로 1957년 출생했다.
그는 게이오(慶應)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미쓰이(三井)은행에서 약 4년간 일한 뒤 정계에 입문했다.
만 29세인 1986년 7월 중의원 선거에서 당시 최연소 기록을 세우며 당선돼 국회의원 생활을 시작했으며 가장 최근에 실시된 2017년 10월 선거까지 연속 11선을 이뤘다.
아버지로부터 직접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아니지만 부친이 오래도록 기반을 다진 돗토리에서 출마한 점 등을 고려하면 넓은 의미의 세습 정치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시바는 방위청 장관, 방위상, 농림수산상, 지방창생담당상을 지냈고 자민당에서 정무조사회장, 간사장을 역임하는 등 행정과 당무를 두루 경험했다.
◇ 8년전 총재 선거서 아베 라이벌로 부상
이시바가 주목받게 되는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8년 전 자민당 총재 선거가 있다.
자민당이 옛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하기 직전인 2012년 9월 실시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총리와 맞붙은 것이다.
그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당원은 아니지만, 당의 정책에 찬동하는 외부 인사) 표(일명 지방 표)를 합산해 겨루는 1차 투표에서는 아베 총리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으나 국회의원 표로만 승부를 가르는 결선 투표에서 밀려 석패했다.
총재가 된 아베 총리는 이시바를 자민당 서열 2위인 간사장에 임명했고 2014년 9월 개각에서는 지방창생담당상에 임명해 '오월동주'(吳越同舟·적의를 품은 사람들이 협력함) 관계가 이어졌다.
아베 내각에 몸을 담은 가운데 이시바는 2015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는 도전하지 않았고 차기 총재 선거를 염두에 두고 '스이게쓰카이'(水月會)라는 파벌을 결성했다.
이시바는 2018년 총재 선거에 나섰으나 국회의원 표와 지방 표에서 모두 아베 총리에게 뒤졌다.
아베 총리는 이시바가 독자 노선을 분명하게 드러내자 이시바 본인은 물론 이시바 파벌 소속 국회의원을 한명도 각료로 기용하지 않는 등 최근에는 철저하게 이시바를 고립시키려고 했다.
지난달 열린 중의원 헌법심사회에서 이시바 전 간사장이 발언이 시선을 끌었는데 발언 내용보다 그가 지방창생담상당이던 2016년 5월 이후 국회 심의에서 처음으로 발언 기회를 얻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시바는 최근에는 벚꽃을 보는 모임을 둘러싼 의혹이나 아베 총리 측근인 가와이 가쓰유키(河井克行)의 금품 선거 의혹 등에 관해 쓴소리를 하며 차기 총재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구심력이 하락한 가운데 그가 후계자로 점찍은 것으로 알려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은 지지율이 낮은 수준을 맴돌고 있고 이시바가 2위와 큰 차이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시바는 이달 20∼21일 교도통신 여론조사를 기준으로 차기 총리 후보군 가운데 지지율 23.6%를 얻어 2위인 아베 총리를 9.4% 포인트 차로 앞섰다.
3위인 고노 다로(河野太郞) 방위상보다는 14.4% 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 역사문제·한일관계 인식 '비둘기파'…개헌론 강경
역사 문제나 한일 관계에 대한 이시바의 인식은 근래 보기 드물게 강경한 아베 총리보다는 훨씬 온건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작년 8월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고 종료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을 때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 눈길을 끌었다.
이시바는 당시 "우리나라가 패전 후, 전쟁 책임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은 것이 많은 문제의 근저에 있으며 그것이 오늘날 여러 가지 모양으로 표면화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며 "뉘른베르크 재판과 별개로 전쟁 책임을 스스로의 손으로 분명하게 한 독일과의 차이는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썼다.
징용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하며 수교 후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 대한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언급한 셈이다.
한일 관계를 오래 지켜본 한 외교 소식통은 앞서 "아베 총리가 매파라면 이시바는 비둘기파"라고 평가한 바 있다.
2003년 방위청 장관 시절에는 한국을 방문해 국립 현충원을 참배했다.
이시바가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할 가능성은 일단 낮아 보인다.
그는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후폭풍이 이어지던 2014년 4월에는 "전쟁터에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에 대해 국민이 애도와 감사의 뜻을 표명하는 공간을 야스쿠니 신사가 독점해도 좋은지에 대한 논의가 있다"며 야스쿠니신사를 대체할 국립 추도시설 건설 방안을 "경청할 가치가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이시바 역시 보수·우파가 주 지지층인 자민당 소속이라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나, 옛 민주당 정권의 총리들이 보여준 것처럼 한국과의 공통분모를 충분히 지니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방위 정책 경험이 풍부한 이시바는 "평화적 외교를 확립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억지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온갖 제도, 장치 훈련을 재검토해 새롭게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2017년 11월 강연에서는 "우리 주변은 모두 핵 대국으로, 일본은 핵무기를 만들 생각은 전혀 없지만 여차하면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억제력이 되고 있는지는 잘 알아야 한다"고 일본의 핵무기 제조기술 보유론을 옹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시바는 2003년 방위청 장관 시절에는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중의원에서 표명하기도 했다.
개헌에 관해서는 현재 아베 총리가 내걸고 있는 것보다 강경한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이시바는 작년 11월 헌법토론회에서는 전력(戰力)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헌법 9조2항을 삭제한 2012년 자민당 개헌 초안이 "유일한 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헌법 9조 수정에 대한 여론의 반감이 강하는 점을 의식해 현행 9조를 그대로 두고 자위대의 존재를 표기하겠다는 개헌 구상을 내놓았는데 이시바는 이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교도통신은 이시바가 자위대를 타국과 마찬가지로 '군대'로 규정하고 싶다는 의식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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