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1년…시위 잠잠해졌지만, '항쟁 불씨' 여전
시위대, 9천 명 가까이 체포 불구 '구의회 선거 압승' 결실
中 '홍콩보안법' 강행·강경파 전면 배치로 친중 진영 되살아나
9월 입법회 선거, 향후 정국 가늠할 중대 분수령 될 듯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9일은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1주년을 맞는 날이다.
지난해 연인원 수백만 명의 사람이 홍콩 시내를 뒤덮었던 송환법 반대 시위의 열기는 1년이 지난 지금 많이 사그라든 모습이다. 중국 중앙정부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강행에도 반대 시위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홍콩 노동계가 총파업을 추진하는 등 항쟁의 불씨는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는 9월 입법회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지난해 11월의 구의원 선거 압승을 재연할 경우 홍콩 정국은 다시 한번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100만·200만 시위, 구의원 선거 압승으로 '결실'
홍콩 시위 사태는 지난 6월 9일 송환법 반대 시위를 그 시발점으로 본다.
지난해 대만에서 한 홍콩인이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망친 사건을 계기로 홍콩 정부는 송환법을 추진했다. 여기에는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홍콩 야당과 재야단체는 인권운동가 등을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이 법이 악용될 수 있다고 보고 강렬하게 반발했고, 이는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6월 9일 첫 번째 시위에는 1997년 홍콩 주권반환 이후 최대 인파가 몰렸다. 홍콩 인구 740만명 가운데 무려 100만 명이 송환법 반대를 외치며 평화적으로 행진했다.
엿새 후인 15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송환법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지만, 때는 늦었다. 다음 날인 16일에는 200만 명에 달하는 홍콩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법안의 완전 철회와 람 장관의 사임을 요구했다.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홍콩 정부에 분노한 시위대는 갈수록 격렬하게 시위를 전개했다. 홍콩 정부의 배후에 중국 중앙정부가 있다는 생각에 시위 때마다 격렬한 '반중국 정서'도 표출했다.
시위가 진정되기는커녕 갈수록 격렬해지자 캐리 람 장관은 9월 4일 송환법 철회를 공식 선언하고 사태 수습책을 내놨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할 수 있다.
11월 8일에는 시위 현장 인근 주차장 건물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던 홍콩과기대생이 나흘 만에 끝내 숨졌고, 사흘 후에는 한 시위 참가자가 경찰이 쏜 총에 가슴을 맞고 중태에 빠졌다.
격분한 홍콩 시위대는 13일부터 시위대 '최후의 보루'로 불린 홍콩이공대에 집결했다. 이들은 화염병, 돌 등은 물론 투석기, 활 등까지 동원해 경찰과 격렬하게 맞섰다.
하지만 경찰의 원천 봉쇄와 강경한 진압 작전에 1천100여 명의 시위대가 체포되거나 투항했다. 홍콩 시위 사태는 시위대의 처절한 패배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11월 24일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의 압승이 거두면서 시위 사태는 극적인 반전을 이뤘다.
범민주 진영이 전체 452석 중 400석 가까이 '싹쓸이'해 18개 구의회 중 17개를 지배하는 압승을 거두면서 송환법 반대 시위는 나름의 결실을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중국의 반격…홍콩보안법 제정으로 민주파 '압살' 노려
구의회 선거의 압승 후 범민주 진영은 기세를 올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중국 중앙정부는 올해 들어 홍콩에 대한 압박의 끈을 조이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말 열린 19기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 때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홍콩에 대한 '전면적 통제권 행사'를 천명했을 때부터 예고됐다고 할 수 있다.
홍콩에 대한 압박은 우선 강경파를 전면에 배치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지난해 말 강경파인 크리스 탕이 홍콩 경찰 총수로 임명된 데 이어 시 주석의 충성파인 뤄후이닝(駱惠寧)이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중련판) 주임으로, 샤바오룽(夏寶龍)이 국무원 홍콩·마카오 판공실 주임으로 임명됐다.
이들은 기존의 중련판 주임 등이 무대 뒷면에서 활동했던 것과 달리 전면에 나서 홍콩 야당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국가보안법 제정을 통한 사회 안정을 촉구했다.
더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홍콩 정부가 전면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을 시행하면서 도심 시위마저 잠잠해진 상태였다.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은 중국 중앙정부는 지난달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때 홍콩보안법 강행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홍콩보안법은 외국 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과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리즘 행위 등을 금지·처벌하고, 홍콩 내에 이를 집행할 기관을 설치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 2009년부터 국가보안법을 시행한 마카오의 선례를 따를 경우 반중 인사 등을 최장 30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홍콩보안법은 홍콩 범민주 진영에는 가히 '핵폭탄'과 같은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시위 잠잠해졌지만, 불씨 여전…9월 입법회 선거 결과 주목
홍콩보안법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등 홍콩의 범민주 진영은 별다른 홍콩보안법 반대 시위조차 전개하지 못한 채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실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 때부터 워낙 많은 시위대가 체포된 탓에 저항의 동력이 많이 상실됐다고도 할 수 있다.
지난해 6월부터 지난달 29일까지 경찰에 체포된 시위대의 수는 8천981명에 달한다. 최연소자는 11살, 최고령자는 84명이었다. 이 가운데 1천749명이 기소돼 100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고, 최고 4년 징역형까지 선고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대규모 체포,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 중국의 홍콩보안법 강행, 경기침체 심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시위 동력의 상실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홍콩 시위의 소멸을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경찰의 불허에도 불구하고 지난 4일 '6·4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31주년 집회에 1만여 명에 달하는 홍콩 시민이 빅토리아 공원에 모여 반중 구호 등을 외친 것은 홍콩 시위의 동력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홍콩 빈과일보가 홍콩민의연구소에 의뢰해 지난 1∼4일 시민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7%가 '5대 요구를 쟁취하려는 결심에 변함이 없다'고 답했으며, 30%는 '결심이 더 강해졌다'고 답했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는 ▲ 송환법 공식 철회 ▲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를 말한다.
나아가 홍콩 노동계와 학생단체는 홍콩보안법에 맞서 총파업(罷工), 동맹휴학(罷課), 철시(罷市) 등 '삼파(三罷) 투쟁'을 추진하기로 했다.
홍콩 정국이 급변하는 가운데 그 분수령은 오는 9월 입법회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9월 입법회 선거에서 친중파 진영이 승리를 거둔다면 홍콩보안법 등 중국 중앙정부의 홍콩 통제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난해 11월 구의회 선거처럼 범민주 진영이 압승을 거둔다면 그 작업에는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지난 4일 톈안먼 시위 기념 집회에 나온 플로렌스 첸(56) 씨는 "중국이 홍콩보안법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우리는 오늘 다시 여기에 모였다"며 "입법회 선거 등에서 다시 한번 우리의 힘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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