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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홍콩인들 反中 '톈안먼 촛불'…8시9분 일제히 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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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홍콩인들 反中 '톈안먼 촛불'…8시9분 일제히 묵념
빅토리아 공원 등 홍콩 전역서 수만명 '톈안먼 시위 희생자' 추모집회
"하늘이 공산당을 멸할 것이다" 극심한 반중 정서 드러내
성조기 들고 美 지지에 감사…몽콕 지역서는 시위대-경찰 충돌도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2020년 6월 4일 저녁 8시 홍콩의 빅토리아 공원.
8시 정각이 되자 빅토리아 공원에 있던 수천 명의 홍콩 시민들은 일제히 손에 든 촛불을 높이 치켜들었다. 여기저기서 구호가 터져 나왔다. "일당독재 종식하자", "홍콩 독립만이 살길이다", "국가보안법 거부한다".
중국의 6·4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31주년을 맞아 홍콩 시민들이 추모의 촛불을 들었다. 중국 정부의 유혈진압으로 희생된 많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고자 베이징에서 수천 리 떨어진 홍콩의 시민들이 모였다.
31년 전인 1989년 6월 4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대학생과 시민들은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해 이를 유혈 진압했고, 이는 중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으로 남게 된다.



이날 집회는 홍콩인에게도 뜻깊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달 2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초안을 통과시키면서 홍콩에도 공포가 엄습했다.
국가를 분열시키고 외국 세력과 결탁하는 행위 등에 최장 30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는 홍콩보안법이 올해 안에 시행된다는 얘기는 홍콩인을 두렵게 하기에 충분했다. 대규모 집회도 다시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날 홍콩인은 지난해와 같이 빅토리아 공원에 다시 모였다. 빅토리아 공원에만 수천 명이 모였다. 몽콕, 쿤퉁, 췬완, 사이잉푼, 툰문, 타이와이 등 홍콩 전역에 모인 시민을 합치면 수만 명이 모인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대응을 빌미로 이날 집회를 불허한 경찰의 엄포도 이들을 막을 순 없었다.
'톈안먼 어머니회를 지지한다'는 팻말을 들고 있던 플로렌스 첸(56) 씨는 "오늘 우리는 여기에 모였다"며 "중국은 국가보안법으로 우리를 침묵시키고자 하지만, 우리는 여기 모여 자유롭게 발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톈안먼 어머니회는 톈안먼 희생자 유족의 모임을 말한다.



저녁 8시 9분에는 빅토리아 공원에 모인 수천 명의 홍콩인이 일제히 묵념을 올렸다. 8시 9분은 1989년에 톈안먼 시위가 벌어졌다는 것을 상징한다.
중국 정부는 톈안먼 시위 유혈진압 희생자가 200∼300명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서방 학자들은 그 희생자가 수천 명에 달한다고 본다.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1분 동안의 묵념이었다.
묵념을 마친 고등학생 유니스(17) 양은 "우리는 6·4 톈안먼 시위를 잊지 않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며 "우리는 경찰이 두렵지 않으며, 더 큰 용기를 내서 앞으로도 계속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를 주최한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支聯會·지련회)의 리척얀(李卓人) 주석은 중국 정부를 강력하게 성토했다.
리 주석은 "중국 공산당의 잘못된 대응으로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며 "독재는 바이러스와 같으며, 세계는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홍콩보안법이 시행되더라도 우리는 내년에 촛불을 들고 이곳으로 모일 것"이라며 "촛불을 들자! 목숨을 걸고 싸우자! 국가보안법 거부한다!"고 외쳤다.
이날 추모 집회는 온라인으로 생중계됐고, 미국, 유럽, 대만 등 세계 곳곳에서 동참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집회에 참석한 홍콩 시민들은 중국에 대한 강력한 반감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25세 여성 웡 씨는 '양국(兩國)이 있어야만 양제(兩制)가 있다'는 깃발을 들고 있었다. 이는 중국이 내세우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에 대한 정면 부정이다. 홍콩은 중국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는 "신장(新疆) 자치구의 강제수용소에서 알 수 있듯 중국 공산당은 자유도, 인간성도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며 "이러한 전체주의 체제와는 갈라서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강조했다.
서방 국가들은 중국이 신장 자치구에서 100만 명에 달하는 위구르족 이슬람교도를 강제수용소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하며, 중국은 이를 강력히 부인한다.



중국에 대한 강력한 반감은 중국과 맞서는 미국에 대한 고마움으로 이어졌다.
대형 성조기를 높이 들고 있던 대니엘 수(63) 씨는 "홍콩의 가장 암울한 시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는 홍콩을 지지하고 나섰다"며 "중국 공산당과 맞서는 미국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내기 위해 성조기를 들고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우리는 아무리 작은 도움이라도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며 "군부 정권에 맞서 민주화에 성공한 한국인들이 우리를 지지한다면 우리에게 정말이지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모 집회에 모인 시민 중에는 '하늘이 중국 공산당을 멸할 것이다(天滅中共)'라는 팻말을 든 사람도 있었다. 시민들은 여기저기서 "광복홍콩 시대혁명", "홍콩인과 함께 자유를 위해 싸우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집회장 바닥에는 수십 개의 촛불로 둘러싸인 채 '미국 군대여, 홍콩에 상륙해 홍콩인을 보호해 주세요'라고 적힌 팻말도 놓여 있었다.
이날 몽콕 지역에서는 도로를 점거하려는 시위대와 사복경찰의 충돌이 발생했으며, 폭발물로 의심되는 물건이 발견돼 경찰 폭발물 처리반이 출동해 이를 해체하기도 했다. 일부 시위대는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이 있는 성완 지역으로 향하다가 경찰의 제지를 당했다.
ssah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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