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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하다 코로나환자 1만명 초과…'방역모범국' 싱가포르의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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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하다 코로나환자 1만명 초과…'방역모범국' 싱가포르의 추락
초반 빗장 닫고 선방하다 개학 강행 후 급속 악화…2주도 안돼 두 배로 늘어
'둑 터진' 이주노동자 기숙사 관리 소홀 뼈 아파…대규모 검사에 성패 달려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싱가포르에서 2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1만명을 넘어섰다.
이날 1천16명이 추가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누적 확진자가 1만141명으로 늘었다.
싱가포르보다 인구가 약 9배 많은 한국의 확진자(22일 현재 1만694명)에 근접한 것인데, 사흘 연속 1천명대 신규 확진을 기록한 추세를 고려하면 최근 10명 안팎의 환자만 발생한 한국을 23일에는 추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난달 초만 해도 홍콩·대만과 함께 방역 모범국 평가를 받았던 싱가포르는 성급한 개학 결정과 30만명가량의 이주노동자가 공동 거주하는 기숙사에 대한 관리 소홀로 한 달여 만에 그 위상이 급격히 추락했다.



◇ 초반 문 잠그며 선방…개학 강행 '방심'에 급속 추락 = 싱가포르는 코로나19 사태 초반 빗장을 걸어 잠그며 확산을 막았다.
중국인 및 중국 여행자들의 입국을 금지했고, 한국 등 확진자가 느는 지역에서 오는 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내부로도 의무휴가나 자가격리 조치를 시행하고, 위반자는 영주권을 박탈하거나 처벌에 나서는 등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지난달 23일 개학을 강행한 것이 분수령이 됐다.
"학교 안이 더 안전하다"는 교육부장관의 장담과는 달리 이틀 만에 한 유치원에서 교사 등 20명가량이 집단 감염되고, 한 국제학교 직원 3명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며칠 만에 교육 당국은 일주일 1회 재택수업으로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이어 한 초등학교 학생이 확진 판정을 받고, 감염 경로가 오리무중인 지역사회 감염이 급증하자 리셴룽 총리는 2주 만에 학교 문을 닫겠다고 밝혔다. 개학 강행이 무리였음을 시인한 셈이다.
일부 전문가는 싱가포르의 개학 결정이 국민에게 "이제는 안전하다"는 잘못된 신호를 줌으로써 방심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패착이라고 지적한다.
당국은 애초 재외 싱가포르인들의 귀국으로 해외감염 사례가 늘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개학 이후 지역사회 감염자가 점진적으로 증가하면서 결국 4월 들어서며 해외 감염자를 추월했다.
개학 당시 누적 확진자는 509명이었지만, 총리의 대국민 담화가 나오기 하루 전인 이달 2일에는 1천49명으로 2주도 채 안 돼 두 배로 늘었다.



◇ 자신감?…마스크 착용도 '만시지탄' = 마스크 착용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더불어 코로나19 예방 및 확산 방지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꼽힌다.
싱가포르도 지난달 초 가구당 4개의 마스크를 무료 배포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정부가 나서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속속 발표하는 주변 동남아 국가들과는 달랐다.
태도 변화는 확진자가 1천명을 넘어선 직후 4월 3일 대국민담화에서야 나왔다. 자신도 감염을 인지하는 못하는 상황에서 남을 감염시킬 수 있다며, 마스크 착용 '권고' 입장으로 바뀌었다.
10일 누적 확진자가 2천명을 넘어서자 그제야 정부는 시장이나 쇼핑몰·슈퍼마켓 등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겠다고 나섰다.
'일부 의무화'에도 나흘 뒤 확진자가 3천명을 넘어서면서 싱가포르 정부는 부랴부랴 모든 주민에게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다는 강경책을 내놨다.



◇ '둑' 터진 이주노동자 기숙사…관리는 말뿐? = 전날(21일)까지 누적 확진자 9천125명 중 약 5분의 4인 7천125명이 이주노동자들이 공동 생활하는 기숙사에서 나왔다.
미얀마, 방글라데시, 인도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 30만명은 기숙사 내 방에 12~20명이 모여 생활하고, 음식은 공동 주방에서 함께 해 먹는다.
애초부터 1m가량의 사회적 거리 두기는 불가능하고, 화장실 등 위생 상황도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 당국은 코로나19 초기부터 기숙사를 관리하는 민간 업체들에 대해 예방 조치를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여러 언론 보도를 보면 정부의 '지시'가 제대로 이행됐는지 의문이다.
로이터 통신이 만난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나옘 아흐메드(26)는 "기숙사는 사람들로 빽빽하고 더럽다. 코로나19 감염 온상이 된 것이 놀랄 일도 아니다"라면서 "이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노동자는 통신에 기숙사에서 발열 검사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주장했다.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의 알렉스 오는 통신에 "땅이 부족하니 정부는 이주노동자 기숙사를 멀리 떨어진 외곽에 짓도록 해왔는데, 이러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게 되고 정부는 코로나19와 싸울 계획을 세우면서도 그들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의료 봉사를 하는 싱가포르 국립대 보건대학의 제레미 림 교수도 미 시사주간지 타임에 "기숙사와 이주노동자 관리는 (당국의) 인지 사각지대였다"고 말했다.



◇ 대규모 검사로 당분간 증가 불가피…후속 조치가 성패 열쇠 = 이주노동자 기숙사를 제외하고는 지역감염 사례는 감소하고 있다. 2주 전 하루 평균 39명에서 전날까지 28명으로 줄었다.
폐쇄 사업장 범위를 더 늘린 일부 봉쇄 조치를 4주간 더 연장하기로 하면서 지역감염 사례는 더 줄 가능성도 있다.
해외감염 사례 역시 이달 9일 이후 0에 가깝다.
따라서 싱가포르 코로나 사태는 기숙사 감염이 어떤 추세로 진행되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은 상당 규모의 확진자가 더 나올 전망이다. 정부는 대규모 검사를 진행 중이다.
현재 하루 2천800~3천건가량의 검사를 진행 중인데 이 중 1천500~2천500건이 이주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고 보건 당국은 설명했다.
리셴룽 총리는 전날 담화에서 진단키트를 해외에서도 들여오겠다고 말해 검사 강화를 시사했다.
양성 환자들은 신속히 격리하고 건강한 이들은 기숙사에서 빼내 분산 수용해야 사태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레미 림 교수는 "기숙사 이주노동자들의 코로나19 발발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싱가포르는 매우 작고 촘촘하기 때문에 일반 대중에게로 쏟아져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sout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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