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 부자나라 코로나19 의료품 사재기서 밀려나 발동동"
'확산세' 남미·아프리카, 검사 필요한 시약 못구해 초기 대응에 어려움
남아공 보건당국, 직원 20명이 계속해서 제조업체에 전화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의료품을 확보하려고 애쓰는 가운데 한편에선 가난한 국가들이 '사재기 경쟁'에서 밀려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9일 보도했다.
최근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하는 아프리카와 남미 과학자들은 코로나19 방역에 필수적인 진단 키트 구입을 위해 제조사들과 접촉했으나 향후 몇달 안에는 물량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답만 들었다. 지금과 같은 공급과 수요의 '격변기'에는 생산량 거의 전부가 미국과 유럽으로 간다는 것이 제조사 측의 설명이다.
게다가 수요 급증으로 마스크부터 진단키트까지 각종 의료품의 가격은 연일 오름세다.
결국 후진국들은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등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국제기구도 의료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에틀레바 카딜리 유니세프 조달 담당자는 100여개국에 보낼 마스크 2억4천만장이 필요하나, 2천800만장만 간신히 구했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 협력 기관으로, 후진국이 진단 키트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혁신진단재단(FIND)의 카타리나 베이마 이사장은 "뒤편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빈국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일부 지역은 의료체계가 부실하고, 필수 장비마저 갖추지 못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인데 사재기 경쟁에서조차 밀리며 이중고에 시달리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일부 빈국에서는 집중치료가 가능한 병상이 인구 100만명당 1개꼴로 턱없이 부족하다.
자원을 놓고 빈국이 부국들과 경쟁을 벌인다는 것은 '글로벌 재앙'에 가깝다고 NYT는 지적했다.
각국 정상들이 개인적으로 제조사 대표에게 직접 연락해 가장 먼저 필수 장비를 넘겨달라고 요구하고, 일부는 개인용 항공기까지 보내 공수하는 상황에서 빈국이 이를 따라 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연방대학에서 공공실험실 여러 곳을 운영하는 아밀카 타누리 박사는 검사에 필요한 시약이 모두 부유한 나라로 가는 바람에 실험실 절반은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브라질의 코로나19 감염자 곡선을 보면 확산 시작 단계에 있어 매우 우려된다면서도 "시험을 할 수 없으니 눈이 먼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매일 실험실로 들어오는 테스트 샘플 200개를 검사하는데 필요한 시약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민간 기업과 연락해봤지만 '미국과 유럽이 이미 몇 달 치 생산분을 선점했다'는 답만 돌아왔다.
아프리카 국가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난달 27일 첫 사망자가 나오자 봉쇄 조치를 취하고 가가호호 방문 조사해 4만7천여명을 검사하는 등 적극적 대응에 나섰다.
남아공에는 과거 에이즈 바이러스(HIV)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한 200개 이상의 공공 실험실도 갖췄다.
그러나 정작 시약 부족으로 그다음 단계를 진행하는 못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감염병 전문가인 프랑수아 벤터 박사는 시약 확보의 어려움으로 국가의 전체 대응마저 위험에 처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대규모 실험을 할 능력도 있지만 시약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라가 공포에 빠졌다"고 말했다.
결국 남아공 보건 당국은 '상황실'을 꾸리고, 20명의 직원을 배치해 계속해서 공급업체들에 전화를 걸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의료품 부족 현상이 부자나라들의 사재기 경쟁 때문만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일단 이런 진단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 수가 적고, 시약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생산 과정에서 필요한 확인과 승인 과정을 거치면서 공급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폴 몰리나로 WHO 물류지원운영팀장은 "제조사들이 부국에만 파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판매처를) 다양화하고 싶지만, 여러 다른 정부로부터 경쟁적으로 신청이 들어오기 때문"이라며 "이처럼 과도한 경쟁이 벌어지고 가격이 치솟는 상황에선 소득이 낮거나 중간 수준인 국가들은 줄의 맨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익을 포기하고, 빈국을 지원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민간 업체도 일부 있다.
영국의 진단키트 제조사인 몰로직은 세네갈과 손잡고 집에서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10분 만에 확인할 수 있는 진단키트 개발을 위한 정부 지원금을 받았다. 심지어 이 진단키트의 생산단가는 1달러 미만이다.
이 회사는 세네갈에 있는 파스퇴르 연구소와 기술을 공유해 진단 키트를 저렴한 가격에 생산할 수 있도록 돕기로 합의했다.
미 정부의 마스크 수출 중단 요구에 대해 수출 중단 시 "심각한 인류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던 3M은 이번 주 정부와 개도국에 대한 수출은 지속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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