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코로나발 정리해고 현실화…선제 대응으로 감원 태풍 막아야
(서울=연합뉴스) 우려했던 기업의 코로나발 감원 공포가 현실화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저가 항공사인 이스타항공이 직원의 약 45%인 750명을 구조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 측은 일단 희망퇴직을 받은 뒤 신청자가 감원 목표치에 미달할 경우 정리해고를 한다는 방침이다. 이스타항공은 수습 부기장 80명에 대해 최근 계약 해지를 통보한 바 있다. 문제는 경영난에 따른 정리해고가 이 항공사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항공업계는 3월 한 달간 사실상 셧다운으로 매출이 끊겼으며, 글로벌 국경폐쇄로 이러한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할지 알 수 없어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대형 항공사인 대한항공도 외국인 조종사 387명 모두에게 3개월간 무급휴가를 보낸 데 이어 상황이 악화할 경우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급여 삭감과 순환 휴직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대형 항공업계의 감원은 이제 시작이지만 항공·공항 하청업체나 면세점, 여행업, 호텔, 음식점업 등에서는 해고나 권고사직, 무급휴직이 광범위하게 확산했다. 바이러스 창궐이 장기화하면 이런 흐름은 서비스업을 넘어 제조업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금난으로 위기를 맞았던 두산중공업은 국책은행으로부터 1조원의 긴급수혈을 받아 급한 불은 껐으나 사업 재편을 위해서는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대기업들도 중소기업들보다 사정은 낫지만, 작년 미·중 무역전쟁 등을 겪으면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코스피 주요 상장사의 작년 매출은 0.47% 늘었으나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37%와 53% 감소했다. 이렇게 수익성이 악화한 상태에서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나 실적은 다시 바닥을 뚫을 전망이다. 대기업의 실적 부진은 경비 절감과 감원으로 연결되고, 협력업체에는 더 큰 구조조정 태풍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100조원의 긴급 민생·기업 구호 패키지를 내놓는 한편 고용유지지원금의 지급 대상 업종과 지원액을 확대하고 긴급복지지원제도의 대상도 늘리는 등 나름대로 애를 쓰지만, 현장에서는 고용과 실업 대책이 지엽적이고 구멍이 많아 보다 근본적 처방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 위기가 닥칠 때마다 가장 먼저 실직에 노출되는 계약직이나 특수고용직, 하청업체 등에 종사하는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지난달 말 무급휴직자 10만명, 특수고용직과 프리랜서 10만명에게 두 달 간 월 50만원씩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특수고용직 노동자만 220만명임을 감안하면 지원 기간이나 규모가 미미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시민단체인 직장갑질119는 계약·파견·하청·특수고용직도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고용유지지원금 수혜 대상을 확대하고 모든 실업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정부가 실업자를 모두 감싸안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만 최대한 재원을 염출해 복지체계의 사각지대에 있거나 생계의 위협을 받는 이들을 구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대적인 재정 일자리 사업 확대를 통해 실직자를 흡수하고, 실업자 재교육에도 신경을 써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대비해야 한다.
다른 한 편으로는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이 일시적 자금난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정부는 이날부터 투자등급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사들이는 2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를 가동하고, 한국은행은 금융기관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방식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는데 만기가 도래한 회사채나 CP의 차환 발행에 문제가 생겨 시중에 나도는 '4월 대란설'에 빌미를 줘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은행은 법규 타령만 할 게 아니라 기업의 자금 경색이 악화할 경우에 대비해 미국이나 유럽의 중앙은행처럼 기업의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직접 매입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위기의 폭풍을 정부 홀로 감당할 수는 없다. 고용의 주체인 기업의 기를 살려 투자와 고용을 유인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은 최근 재계가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제안한 '한시적 규제유예'와 관련, 합리적 제안은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 기업인의 비명이 큰 규제부터 살펴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지거나 현실에 맞지 않는 것부터 조속히 손질하길 바란다. 코로나 사태가 종료될 때까지 기업의 감원을 한시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노사정 대타협도 시도해봄 직하다. 기업이 정리해고를 자제하는 대신 정부는 정책과 금융·재정으로 지원하고, 노동계는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유연성을 발휘함으로써 상생을 도모하는 방식이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