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회충 40년 사이 238배 급증…해양 포유류 위협
회·초밥 통해 인체 감염되면 식중독 비슷한 증상 유발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바닷물고기에 기생하는 고래회충이 지난 40년 사이에 283배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대 2㎝까지 자라는 고래회충은 회나 초밥 등 날 것이나 덜 익힌 생선을 통해 인체에 들어올 수 있다. 인체 장벽에 침투해 설사나 욕지기, 구토 등 식중독과 비슷한 증상을 일으키지만 번식을 못 하고 며칠만에 죽으면서 증상도 사라진다. 이런 증상을 '아니사키스(anisakiasis)병'이라고 진단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이를 단순 식중독으로 알고 지나간다고 한다.
하지만 고래나 물개, 바다사자 등 해양 포유류의 장에서는 이 기생충이 수년간 생존하며 번식까지 해 심각한 위협을 제기할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미국 워싱턴대학에 따르면 이 대학 수산어장과학과 첼시 우드 조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바닷물고기의 고래회충 개체수를 다룬 논문들을 종합 분석해 얻은 연구 결과를 학술지 '지구 변화 생물학'(Global Change Biology)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고래회충이나 물개 회충(pseudoterranova) 등을 언급한 온라인 문헌을 모두 검색한 뒤 특정 시점의 기생충 개체수를 다룬 논문만 추려내 분석했다.
그 결과, 고래회충은 1978년부터 2015년 사이에 283배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물개회충은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고래회충이 이처럼 급증한 이유에 관해서는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기후변화나 비료사용에 따른 부영양화, 해양 포유류 개체수 증가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팀은 특히 1972년부터 해양포유류보호법이 발효되면서 해양 포유류 개체수가 늘어난 시기와 고래회충이 급증한 시기가 거의 일치하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고래회충이 해양 포유류의 장 속에서 번식한 뒤 배설물을 통해 충란이 바다로 다시 흘러드는데 해양 포유류가 늘면서 고래회충 '공장'이 늘어난 것이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고래회충의 충란은 해저에서 부화해 1차로 작은 새우나 물벼룩의 먹이가 되고, 먹이사슬을 타고 작은 물고기에서 큰 물고기로 옮아간다.
연구팀은 고래회충이 해양 포유류에 미치는 생리적 영향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지만 수년간 장내에서 생존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상당히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고래회충 급증이 해양 포유류 개체수 증가에 원인이 있다면 생태계 복원을 알리는 희소식일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 기생충에 취약한 다른 멸종위기종의 회복을 어렵게 하고 더 큰 위험으로 몰아넣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논문 교신저자인 우드 박사는 "일부 해양 포유류의 개체수가 회복되지 않고 있는 것이 기생충 때문일 수 있다는 점이 종종 간과되고 있다"면서 "이번 연구결과가 멸종위기 해양 포유류의 개체수 증가를 막는 잠재적 요인으로 장내 기생충 가능성을 검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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