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50조원대 금융비상대책…국면 압도할 정책적 상상력 더 발휘해야
(서울=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직접 키를 잡고 연 제1차 비상경제회의의 대책은 서민 경제 근간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 구제 방안이다. 문 대통령은 이를 50조원에 달하는 특단의 비상금융조치라고 밝혔다. 소상공인 긴급경영자금 신규지원이 12조원, 특례보증지원 5조5천억원, 이들에 대한 전 금융권의 대출 만기 6개월 연장과 이자 납부 유예, 연 매출 1억원 이하 영세 소상공인들에게 대출금 5천만원까지 전액 보증 제공 등 동원할 수 있는 대책이 총 망라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거리에 인적이 끊기고 관광산업이 빈사상태에 빠지면서 매출이 바닥난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소기업은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금융기관이나 정책자금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정부가 던진 구명줄이 한계에 몰린 이들에게 희망의 동아줄이 되길 바란다. 대책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정부는 그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긴급경영자금 수혈에 나섰으나 보증심사가 지체되면서 실제 대출이 이뤄지기까지는 빨라야 2∼3개월이라는 불평과 민원이 빗발쳤다. 한국은행까지 가세한 대책인 만큼 모든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동참으로 실효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글로벌 팬데믹으로 숨 쉴 틈 없이 밀어닥치는 거대한 피해 쓰나미의 일각을 막아주는 방파제일 뿐이다. 생계 위협에 노출된 실업자나 비정규직, 일일근로자 등 저소득 취약계층을 위한 정부의 직접 지원도 절실하다. 이미 세계 각국이 나라 곳간을 열었으며 서울시와 전주시, 강원도 등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 가운데 대상을 정해 일회성으로 현금이나 지역사랑 상품권 등을 30만∼50만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상 선정 기준, 지원 액수와 방식 등이 제각각이어서 지방자치단체 간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더 큰 혼선이 생기기 전에 정부가 나서 재난 기본소득성 생계 지원에 대한 입장과 원칙, 재원 조달 방안을 밝히고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실태를 참고해 그 게 현금이든 상품권이든 쿠폰이든 우리 실정에 맞고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모델을 제시하길 기대한다.
민생 구제와 함께 고용의 근간인 기업의 자금난을 더는 정책도 시급하다. 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관광업계와 항공업계는 매출 급감으로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수출 업체들 가운데도 매출 감소와 자금난으로 벼랑 끝에 몰린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일시적 자금난에 빠져 도산할 경우 국가 경제가 받는 충격은 심대할 것이다. 금융시장 불안도 기업 자금난을 부채질하고 있다. 기업들에 신용위기가 닥칠 경우 외환위기 때처럼 부실이 금융권으로 전이되면서 새로운 국가 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정부는 금융기관 공동출자로 채권시장안정 펀드를 만들고 증권시장안정 기금 등을 조성하기로 했으나 하루가 다르게 증폭하는 시장 공포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도 나서야 한다. 문 대통령이 언급했듯 지금이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상황이 어렵다면 당시 금융기관과 기업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풀었던 28조원대 이상의 패키지를 주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거대 경제권인 미국과 유럽이 바이러스에 허를 찔려 비틀거리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초토화하고 있다. 달러 수요가 폭발하자 주식과 원유, 비기축통화국 화폐 가치가 추락하고, 안전자산인 금과 국채 가격마저 내려가며 공황이 빚어지고 있다. 전날 미국 뉴욕증시는 20,000선이 깨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전 수준으로 내려앉았고, 국제유가는 20달러 선이 위협받고 있다. 이날 코스피 지수도 8.39%나 밀려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선마저 허망하게 무너졌고, 원화 환율은 급등해 달러당 1천300원대로 치솟고 있다. 시장의 패닉이 언제 진정될 수 있을지 암담하기만 하다. 자신을 '전시 대통령'으로 규정한 트럼프 대통령은 경기부양책으로는 전대미문의 액수인 1조달러 패키지를 꺼내 드는 등 세계 주요국이 소비 부양과 시장 안정, 기업 지원에 엄청난 재정과 정책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다양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국면을 압도할만한 '정책적 상상력'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민생 구제와 경기 부양, 금융시장 안정, 기업의 생존력 강화를 동시에 꾀할 수 있는 통이 크면서도 정교한 '한국판 뉴딜' 같은 과감한 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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