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업체 주가 50% 폭락…"사우디-러시아 유가 전쟁 타깃은 미국" 관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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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유가 전쟁'에 돌입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국제유가가 폭락하자 미국 셰일 석유 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과 폭스 방송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국의 셰일 석유 업체인 다이아몬드백 에너지와 파슬리 에너지는 이날 시추 활동을 줄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가가 낮아 원유를 생산하면 손해가 나는 상황을 맞게 된 데 따른 것이다.
다이아몬드백 에너지는 내달 가동 중인 유정 중 2곳을 중단하고 상반기 내에 1곳을 더 닫기로 했다. 원유 생산 전 마무리 단계인 유정 완성(well completion) 팀 숫자도 9개에서 6개로 줄인다.
파슬리 에너지 역시 원유 채굴 장비 가동 수를 기존 15개에서 12개로 줄일 계획이다.
석유 산업 전문가들은 다른 셰일 석유 기업들도 유사한 조처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이날 증시에서는 셰일 석유 업체들의 주가가 수익 하락과 파산 위험을 반영해 급락했다.
미 셰일 기업 아파치와 옥시덴탈 페트롤륨의 주가는 각각 54%와 52%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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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팅 기업 엔베루스의 이언 니버 상무는 셰일산업이 제조원가를 감당하려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최소 40달러대 초반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30달러대에 머물게 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가격이 24.6% 떨어진 배럴당 31.1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1991년 걸프전 이후 하루 기준 최악의 낙폭이다.
미국은 퇴적암(셰일)층에 고압의 액체를 분사해 원유와 가스를 뽑아내는 방식으로 하루에 약 1천3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지만 전통적인 산유국에 비해서는 제조원가가 높은 편이다.
이에 따라 그 전부터 수익성이 높지 않았던 미국 셰일 기업이 유가 하락의 충격으로 도산 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파이오니어 내추럴 리소스의 스콧 셰필드 CEO는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향후 2년간 (셰일 원유 관련) 자원개발 업체의 절반이 파산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지난 2015년 국제유가 하락기와 달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원유 수요 자체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벌어진 유가 급락이어서 셰일 업체들의 불안감은 더 크다.
이번 유가 급락 사태는 과거보다 미국의 경제에 부정적인 측면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석유·가스 추출과 원유 정제업에 종사하는 인원은 50만명이 넘는다.
CNN 방송은 미국이 과거와는 달리 석유 순소비국이 아닌 생산국이 된 만큼 유가 하락의 경제 피해가 금융위기 때인 2008년이나 1991년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유가가 낮은 수준에 머물면 미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0.15∼0.35%포인트가량 깎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소비자에겐 좋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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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유가 급락 사태가 표면적으로는 감산을 둘러싼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합의 무산에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석유산업을 겨냥한 공격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미국 경제방송 CNBC는 "고의적이든 아니든 유가 전쟁은 미국 석유산업에 타격을 입혔다"고 진단했다.
RBC에서 세계 원자재 전략을 총괄하는 헬리마 크로프트는 "러시아는 미국 셰일 기업을 겨냥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미국의 에너지 상황이 풍족했기에 가능했던 (산유국에 대한) 일방적 제재 정책을 겨냥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에너지 자급 능력을 망가뜨려 러시아와 이란, 베네수엘라 등 산유국에 대해 미국이 일방적 경제제재를 내릴 수 없도록 하려는 속셈이라는 이야기다.
미국 에너지부는 이날 저녁 성명에서 미국이 앞으로도 석유·천연가스 최대 생산국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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