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코로나 난국'서 진짜 시험대 오른 트럼프 리더십
코로나19, 대선 변수로…'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트루먼 향수의 '소환'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미국 내 14개 주에서 경선이 동시에 치러져 '슈퍼 화요일'로 불리는 지난 3일(현지시간) 출구조사 결과, 유권자 4명 가운데 3명꼴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오는 11월 대선에서 후보 선택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답했다.
캘리포니아, 텍사스,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등 가장 많은 대의원 수가 걸려있는 상위 4개 주를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였다.
그만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공포가 미국 사회 내에서도 이미 깊숙하게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코로나19 확산 문제가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에서도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도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첫 기자회견 때만 해도 코로나19보다 독감 사망자가 많다는 식으로 '남의 동네' 일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미국 내 첫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사태가 계속 확산하자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트럼프 대통령이 현장 행보가 연일 계속되고 있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이끄는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의 브리핑도 날마다 열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지난 6일 의회에서 초당적으로 통과한 83억 달러(약 9조8천억원) 규모의 긴급 예산안에도 일사천리로 서명했다. 이는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요청한 금액의 3배 이상에 이르는 규모다.
여기에는 '코로나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경제적 충격파 확산 등 재선 가도에서 대형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밤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열린 폭스뉴스 주최 타운홀 행사에서 코로나19가 미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시인'하면서 "모든 가능성에 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화자찬과 남 탓을 즐기고 과학적 근거보다는 직감에 의존하는 트럼프 스타일은 코로나19 대응에서도 뒷말을 낳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 폐쇄 등 발 빠른 초동대처가 조기 확산을 막았다면서 미국 내 위험은 여전히 낮다는 말을 되풀이 해왔다.
행정부의 대응 혼선을 지적하는 민주당과 언론을 향해서는 '사기극'이라고 역공을 취하며 자신의 재선가도에 타격을 입히기 위한 정쟁 시도라고 맞서고 있다.
급기야 세계보건기구(WHO)가 밝힌 3.4%의 치명률에 대해서도 구체적 근거 없이 부풀려 있다는 의혹을 제기, 심각성 축소에 나서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상황인식 및 대응 수위를 놓고 보건 당국 등 행정부 인사들과도 엇박자가 연출되는 등 난맥상은 이어지고 있다.
반(反)트럼프 진영에서는 리더로서의 '자질 결함'이 이번 국면에서 다시 한번 여실히 드러났다고 공격의 고삐를 죄고 있다.
현안에 관해 공부하지 않는다는 점, 어떤 주제든 간에 자신이 전문가들보다 '한 수'위라고 생각하며 전문가 집단을 경시하고 자신의 본능과 직감을 신뢰한다는 점, 충신들은 다 떠나고 예스맨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 거짓말을 자주 해 믿기 힘들다는 점, 통합의 리더십이 아닌 분열의 지도자라는 점 등이 주요 공격 지점이다.
요즘 워싱턴 정가에서 '트루먼 리더십'이 새삼 '소환'되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미국의 33대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은 자신의 좌우명인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문구가 새겨진 명패를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둔 것으로 유명하다.
'코로나 정국'에서만큼은 분열과 남탓, 편가르기식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책임을 지는 자세로 진두지휘하는 지도자를 보고 싶다는 정서가 트루먼 리더십에 대한 '향수'로 투사됐다는 것이다.
미 CNN방송의 국가안보 분석가 피터 버겐은 최근 칼럼에서 "결과가 좋으면 나의 공이지만 결과가 나쁘면 다른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먼 전 대통령과는 정반대"라고 꼬집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동맹이든 우방이든 가리지 않고 가차 없이 포문을 열 때마다 내세웠던 가치는 '미국 우선주의'에 기댄 미국의 이익과 자국민 보호였다. 미국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코로나19 대응에서 실패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그토록 목소리를 높였던 '국민 보호'의 구호는 무색해지고 재선을 바라보는 그의 정치적 미래 자체가 암울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버겐은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운이 좋았다. 지난 반세기간 그의 모든 전임자에게 큰 도전으로 닥쳤던 중대 위기들에 버금가는 일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3년 재임 기간에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난국'을 맞아 트럼프 대통령의 위기극복 리더십이 그야말로 진짜 시험대에 올랐다는 얘기다. '코로나 리스크'를 관리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리스크'가 발목을 잡아선 안된다는 우려도 고개를 든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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