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 일왕 "헌법 준수…관용으로 다양성 수용해야"
혐한 시위 등 배외주의 기승부리는 가운데 교류 가치 중시
"코로나19 감염 확대 우려…조기 수습되기 바란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나루히토(德仁) 일왕은 헌법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며 일본 사회에 소수자 등을 수용하는 관용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23일 일본 왕실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인 궁내청에 따르면 나루히토 일왕은 최근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 헌법이 일왕을 "일본국 및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헌법을 준수해 상징으로서의 책무를 성실하게 완수해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작년 10월 즉위 행사 때도 헌법을 준수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바 있다.
헌법을 지키겠다는 것은 일견 당연한 발언이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헌법을 고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는 상황이라서 미묘하게 대비된다.
일왕은 다양한 뿌리를 가진 민족이 일본에 터를 잡는 등 재일 외국인이 늘어가는 가운데 일본 사회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함께 밝혔다.
나루히토 일왕은 "세계에는 다양한 분들이 계시며 그런 다양성에 대해 우리들은 관용의 마음을 가지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다"며 "나도 계속 그런 분들에 대해 이해를 깊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여름 예정된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을 통해 "특히 젊은 사람들이 세계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 일본을 찾아오는 선수나 관객 등과 교류하면서 일본인이 "세계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국제적인 시야를 넓히는 기회가 될 것은 기대함과 동시에 역으로 외국 분들에게도 일본을 아는 좋은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소수자를 특정해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재일 한국·조선인 등을 겨냥한 차별이나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가 사회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나루히토 일왕의 발언이 일본 사회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가 주목된다.
일본 우익 등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배외주의가 순혈주의적 가치관을 강조하는 것에 비춰보면 나루히토 일왕은 이와는 선을 긋고 다양성이나 교류의 가치를 중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키히토(明仁) 상왕은 앞서 재위 중에 한국과의 유대를 강조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궁내청에 따르면 그는 2001년 12월 8일 생일을 앞두고 연 기자회견에서 "나 자신으로서는 간무(桓武)천황(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는 것에서 한국과의 연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대를 우려하고 있고 감염자와 그 가족을 위로한다며 조속히 사태가 수습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이번 회견에서 표명했다.
회견은 나루히토 일왕이 23일 회갑을 맞는 것을 기념해 열렸으며 즉위 행사 후 첫 기자회견이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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