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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 학생들의 베를리너 3주…"북측은 외국인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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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 학생들의 베를리너 3주…"북측은 외국인 아니잖아요"
이스트사이드갤러리 '형제의 키스'에 북한 학생 "남사스럽다"…장벽공원도 방문
남북학생들, 기숙사에서 함께 요리도…베를린자유대, 연수 정례화 추진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북한 학생들은 외국인이 아니잖아요."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과의 대화에 불편함이 없었느냐는 특파원의 질문에 한 홍익대 여학생은 이렇게 답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베를린자유대 계절학기 푸비스 프로그램 종강식 한쪽에서 여학생들이 왁자지껄했다.
남북의 여학생 10명 정도가 모여있었다.
부산대 도시공학과(2학년) 박소정 씨가 북측 학생들의 이름 맞추기를 하는 과정에서 웃음을 유발하자 남북을 가릴 것 없이 학생들이 포복절도했다.
박씨는 북측 학생들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손가락 도장을 찍었다.
이날 저녁 기숙사에서 열리는 파티에서 삼겹살을 같이 구워 먹으며 시간을 보내자는 약속이었다.
약속은 지켜졌다. 남북의 학생들과 칠레 등에서 온 외국 학생들이 함께 요리를 하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남측 학생이 파스타를 만들고 북측 학생이 김치찌개를 끓여 같이 나눠 먹었다.
김일성종합대학 도이칠란트과 학생 12명은 지난 4일 베를린자유대 초청으로 독일 베를린에 도착해 남측을 포함한 여러 국가 학생들과 계절학기를 수강했다.
같은 과 교수 2명이 인솔 및 학술연구차 함께 왔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한반도 정세가 경색된 가운데 이뤄진 방문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남북교류도 사실상 꽉 막힌 상황에서 해외에서 남북의 대학생들이 이례적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이날 종강일은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과 남측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날이었다.
남측에서는 부산대와 홍익대를 중심으로 80명 정도의 학생들이 계절학기를 수강했다.


◇ "북측 학생들, 학업 자존심 강해 보여"…베를린 역사·문화 탐방
북측 학생들은 도이칠란트과에서도 실력 등을 감안해 선발된 이들이었다.
계절학기 학생들은 독일어 실력별로 몇 개 반으로 나뉘었는데, 북측 학생들은 대부분 상위 반에 편성됐다.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은 졸업반인 5학년과 3학년이었다.
북측 학생들은 수업에 상당히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과제도 상당해 새벽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베를린자유대 관계자는 "학업에 대한 자존심이 강해 보였고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느끼는 듯했다"고 말했다.
북측 학생들은 학업 외에 계절학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여러 국적의 학생들과 박물관 견학을 함께 했다.
특히 베를린 장벽공원과 베를린 장벽 일부에 조성된 이스트사이드갤러리를 견학해 눈길을 끌었다.
이스트사이드갤러리의 대표작으로 동서독 분단기 소련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동독의 에리히 호네커 서기장 간의 키스장면을 그린 '형제의 키스' 앞에서 한 북측 학생은 "남사스럽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홀로코스트 추모관과 연방의회, 맥주 양조장에서 문화시설로 변신한 쿨투어브라우어라이 등도 방문했다.
북측 학생들은 계절학기 프로그램과 별도로 좌파당사를 찾아 한스 모드로 전 동독 총리와 만나기도 했다. 좌파당은 북한과 교류해왔다.
이외에 북측 학생들은 베를린자유대 측의 협조를 받으며 자유일정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 "김일성대 학생들은 특권층" 반감도…"남북이 서로 알아갈 기회"
남측 학생들은 지난 6일 개강식에서 북측 학생들을 처음 보고는 적잖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미 대화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남북교류도 사실상 중단 국면을 맞았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던 탓이다.
남측 학생들 입장에서도 베를린에서 북측 학생들을 만나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개강식 때만 해도 남북의 학생들은 서로 거리를 둔 채 말을 거의 섞지 않았다.
북측 학생들의 베를린 연수를 추진한 이은정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 교수는 "개강식 때는 남측 학생들이 '북측 학생들에게 말을 걸어도 되느냐'고 물어왔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종강식에서 만난 한 남측 학생은 특파원에게 "북측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 게 알려지면 한국에서 당국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느냐"고 물었다가 "문제없다"는 답변을 듣자 안도하기도 했다.
남측 학생들은 독일어 비전공자와 저학년이 많아 주로 중하위 반에 배치돼 북측 학생들과 수업을 같이 들을 기회는 적었다.
그래도 외부 견학 시간과 기숙사 생활 등을 통해 남북의 학생들이 말을 섞을 수 있었다.
기숙사 주방에서 요리를 같이하면서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많았다.
주독 북한대사관이 떡과 김치 등을 북측 학생들에게 전달했고, 북측 학생들이 남측 학생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부산대 노어노문학과(3학년) 학생인 김충현 씨는 "북측 친구들은 대동강 맥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면서 "그들에게 '남북 교류가 되면 대동강 맥주를 들고 대동강변을 산책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정을 나눈 탓인지 남측 학생들은 북측 학생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박소정 씨는 북측 학생들과 헤어지는 심정을 묻는 기자에게 "솔직히 서로 연락할 방법도 없고 다시 만나기가 어렵지 않겠느냐"라며 "그래도 이름을 열심히 외워 까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남측 학생들이 북측 학생들을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남측 학생은 "북한 사람들은 굶어가는데 여기 온 친구들은 대체로 특권층의 자제로 보이고 좋은 해외 브랜드 옷을 입고 있다"며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북한에서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출신성분이 좋지 않으면 김일성종합대학 입학은 꿈꾸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왔다.
북측 학생들은 연수 기간 남측 학생들과 달리 상당한 대우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남측 학생들은 북측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대체로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구나"라며 동질성을 느꼈다고 한다.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70여년을 떨어져 살다 보니 단어 등의 쓰임이 달라 소통에 어려움이 따르기도 했다.
'해병대 예비학사장교인 김충현 씨는 "탈북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해주는 초등학교를 졸업해 우리와 다른 북한 단어와 사투리를 알고 있어 소통에 문제가 없었는데, 다른 남측 학생과 북측 학생들은 의사소통 시 애를 먹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같은 민족이다 보니 남북의 학생들이 쉽게 정을 나눌 수 있었지만, 분단의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도 여실히 드러난 셈이었다.
김충현 씨는 남북 간 언어의 차이점을 지적하면서 "민간이나 학술 분야의 인적교류를 허용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베를린자유대는 앞으로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의 겨울학기 연수를 정기화할 계획이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우리 정부도 관심을 갖고 베를린자유대측과 협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은정 교수는 "짧은 시간에 남북 학생들의 머릿속에 있던 장벽들이 사라졌다"면서 "해외에서라도 남북의 시민이 조금씩 서로 이해하고 가까워질 기회가 많아지면 향후 남북이 이질감을 극복하고 공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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