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교황측 "허락없이 공저자로 표기"…저자 진위 공방으로 번져
책 쓴 사라 추기경 "서신으로 책 내용·공저 표기 허락받아" 반박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사제독신제' 전통 유지를 주장하는 내용이 담긴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92)의 저서를 둘러싼 논란이 책 저자 표기의 진위 공방으로 번졌다.
ANSA 통신 등에 따르면 베네딕토 16세의 개인 비서인 게오르크 겐스바인 대주교는 14일(현지시간) 베네딕토 16세의 승낙 없이 책의 공저자로 기재됐다며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겐스바인 대주교는 책을 집필한 로버트 사라 추기경(74·기니)이 사제독신제와 관련한 책을 준비한다는 것을 전임 교황도 알고 있었고 원한다면 책에 활용해도 좋다는 허락과 함께 사제직에 대한 에세이를 준 것은 사실이지만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을 승인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책의 공저자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한 것은 베네딕토 16세 본인의 뜻이라고 겐스바인 대주교는 강조했다.
앞서 베네딕토 16세와 교황청 경신성사성 장관인 사라 추기경이 공저자로 표기된 '마음 깊은 곳에서: 사제, 독신주의 그리고 천주교의 위기'라는 제목의 책이 13일 프랑스 등에서 출간돼 화제를 모았다.
책에서 베네딕토 16세는 가톨릭 사제가 혼인하지 않는 사제독신제의 전통을 깨려는 시도에 침묵할 수 없다며 그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돼 있다.
이는 심각한 사제 부족 현상을 빚는 남미 아마존 등에 사제독신제의 예외를 둘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한 적이 있는 프란치스코 현 교황의 입장과 상충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톨릭 교계에선 전임 교황과 현직 교황이 사제독신제를 두고 초유의 대립 사태를 빚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자진 사임 당시 자신의 후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절대적 복종'을 맹세하며 세상 뒤에 숨어 조용히 지내겠다는 언약을 스스로 깼다는 비판론도 제기됐다.
교리 등에서 보수적 관점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독일 출신의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4월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제265대 교황직에 올랐으나 8년 만인 2013년 2월 건강 등을 이유로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가톨릭 역사상 60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앞서 이탈리아 현지 언론들은 이날 베네딕토 16세를 수행하는 신원 미상의 인물을 인용해 전임 교황이 사라 추기경과 책을 공동 집필·출간하는 일에 결코 동의한 적 없다고 보도했다.
바티칸의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 가톨릭의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을 공격하고자 노쇠한 전임 교황을 악의적으로 이용해왔다며 책 출간의 저의를 의심하는 분석을 내놓던 와중에 나온 보도다.
하지만 사라 추기경은 베네딕토 16세와 직접 여러 차례 서신을 주고받으며 책의 내용과 공저자 표기에 대한 허락을 받았다며 보도 내용을 완강히 부인했다.
lu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