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00 도쿄올림픽, 전기 마련하는 '아베 올림픽' 될까
반세기 만의 도쿄올림픽 두 열쇠말 '레거시'·'부흥'
아베 총리, 올림픽 계기 '새로운 나라 만들기' 역설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오는 7월 24일 막을 올리는 제32회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의 키워드(열쇠말)로는 올림픽 후에 남는 유산을 의미하는 '레거시'(Legacy)와 대형 재해를 이겨낸다는 뜻의 '부흥'이 떠올라 있다.
오는 6일로 개막까지 200일을 남겨둔 이번 대회는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 열린 올림픽인 1964년의 제18회 도쿄 대회에 이어 일본에서 반세기(56년) 만에 다시 치러지는 하계올림픽이다.
일본은 1964년 대회를 계기로 전국이 초토화한 패전 국가라는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내고 전 세계에 경제 대국으로 약동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총 94개국에서 7천 명가량의 선수가 참가해 그때까지 최대 규모로 기록된 1964년 도쿄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쓴 돈은 당시 연간 예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조엔이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8천800억엔이 고속철도(신칸센), 지하철, 고속도로 건설 등 사회기간 시설 확충에 사용됐다.
일본은 그 효과로 1965년 11월부터 1970년 7월까지 57개월 동안의 경기 확장세를 보인 이른바 '이자나기' 호황을 누리면서 연평균 10%에 달하는 고도성장기를 열었다.
그런 배경에서 1964년 도쿄올림픽의 레거시로 신칸센이 남았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56년 만의 도쿄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레거시와 부흥이 다시 키워드로 주목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있다.
1차 집권(2006년 9월~2007년 9월) 후의 공백기를 거쳐 2012년 12월 재집권에 성공해 줄곧 총리직을 맡으면서 지난해 11월 20일 통산 재임일수 2천887일로 일본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된 그는 도쿄올림픽을 유치해 준비하고 개최하는 전 과정을 이끌었다.
아베 총리는 제32회 하계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한 2013년 9월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에노스 아이레스 총회 때 발표자로 직접 나서 마드리드(스페인)와 이스탄불(터키)을 밀어내고 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권을 따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올림픽 유치 단계에서 개최까지는 7년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한 명의 총리가 유치와 개최까지 동시에 관장하는 것은 의원내각제의 특성상 행정수반인 총리가 빈번하게 바뀌는 일본의 정치 환경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나 '최장수 총리'인 아베는 성사를 목전에 두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일 방송된 민영 방송 ANN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유치 당시를 회고했다.
2차 집권을 시작한 뒤 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판단하고 자신이 직접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서 프레젠테이션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선수들에게 최고의 경기 환경을 제공할 것을 약속하고, 동일본대지진(2011년) 재해를 딛고 "멋지게 다시 일어서는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호소해 유치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로 그때 약속한 것을 실행하게 됐다"며 세계 각국의 많은 정상이 와서 '멋진' 도쿄올림픽 개회식을 봐줬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아베 총리는 "올해 전 세계 사람들이 일본으로 온다"며 "(올림픽 개최로) 약동감이 넘치는 시대에 새로운 나라 만들기를 시작해 가고 싶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번 도쿄올림픽을 통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전 세계인의 뇌리에 남은 동일본대지진 재해를 극복해 부흥을 이루어 가는 일본의 모습과 새로운 나라 만들기라는 레거시를 남기겠다는 포부를 내비친 것이다.
아베 총리의 말대로 동일본대지진과 연관된 부흥 메시지는 성화 봉송 단계부터 발신하는 것으로 이미 정해졌다.
3월 26일부터 121일간 펼쳐지는 일본 내의 성화 봉송이 동일본대지진 직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대응 본부가 설치됐던 J빌리지(축구 국가대표 훈련시설)에서 시작돼 사흘간 성화가 후쿠시마 곳곳을 돌게 된다.
또 IOC는 일본 정부의 요청에 따라 야구와 소프트볼 일부 경기를 후쿠시마의 아즈마 스타디움에서 열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의 안전성을 홍보하기 위해 올림픽 선수촌에 후쿠시마산 식자재도 공급할 예정이다.
아베 총리가 염두에 두는 새로운 나라 만들기라는 올림픽 레거시는 정치적으로 함축된 의미를 담고 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은 한때 일본을 세계 제2의 경제대국(G2) 반열로 끌어올리는 디딤돌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일본의 사회구조가 바뀌어 역동성이 약해진 상황이라서 이번 도쿄 올림픽이 일본 경제에 큰 플러스 요인이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별로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부동산 시장 등에 대한 기대 수요가 줄면서 경기가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
아베 총리는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새해를 앞두고 일본의 유명 배우인 오카다 준이치(岡田准一·39), 체조 선수인 무라카미 마이(村上茉愛·23)와 신춘대담을 했고, 그 내용은 지난 1일 자 우익성향인 산케이신문에 소개됐다.
아베 총리는 올해 포부를 들려달라는 주문에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레이와(令和·나루히토 새 일왕 연호) 시대가 시작됐고 올해 드디어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이 열린다. 전후(태평양전쟁 종전 후)로 이미 70년 이상이 지났고, 그만큼 헌법도 역사를 쌓아왔다. 새 시대에 어울리는 헌법을 국민 손으로 새롭게 만들어 갈 시대가 왔다. 책임을 다해 헌법 개정을 내 손으로 어떻게든 추진해 나가고 싶다."
그러나 개헌 논의에 소극적인 일본 야권의 태도와 개헌 자체에 관심이 낮은 국민 정서를 고려하면 올해 안에 개헌과 관련한 방향이 잡힐 공산은 매우 적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사실상 임기가 1년 9개월 정도 남은 아베 총리에게 비원(悲願)이라는 개헌의 꿈을 자신의 손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런 구도 속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메인이벤트가 바로 도쿄올림픽일 수 있다.
정부 주관 봄맞이 행사인 '사쿠라(벚꽃)를 보는 모임'을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논란 등 여러 악재가 최근 쏟아지면서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는 아베 총리는 자신이 유치하고, 준비하고, 개최까지 하는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정치적 위상을 한층 높일 수 있다.
이 점에 주목해 일부 일본 언론은 내년 9월 집권 자민당 총재 임기, 내년 10월 중의원 임기 등 두 개의 임기 만료를 앞둔 아베 총리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나서 그 분위기를 활용해 중의원 해산 총선에 나서는 것으로 재집권을 모색하면서 개헌을 추진해 나갈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아베 총리가 올림픽을 활용해 남기고자 하는 레거시로 개헌을 염두에 두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스포츠 제전인 이번 도쿄올림픽이 아베 총리의 정치적 구상을 실현해 주는 디딤돌이 되는 '아베 올림픽'이 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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