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홍콩 친중파…"선거 참패 후 낙선자 일자리 찾기 막막"(종합)
지역 사무실서도 쫓겨날 판…"캐리 람 참모들 집단 사퇴까지 고려"
선거 압승 범민주 진영, 구의원 혜택 누리며 '지역 기반' 강화
교육부 장관은 "시위 동조 교장·교사 해고할 수도" 강경 발언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지난달 24일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의 압승과 친중파 진영의 참패라는 결과가 빚어진 후 홍콩 친중파 진영의 내분과 수난이 이어지고 있다.
3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행정장관 자문기구인 행정회의 구성원인 친중파 레지나 이프 의원은 전날 방송 인터뷰에서 행정회의 내에서 집단사퇴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프 의원은 "우리는 캐리 람 행정장관에게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집단 사퇴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하지만 람 장관은 우리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캐리 람 장관은 2017년 7월 취임 후 사회 저명인사, 입법회 의원 등으로 이뤄진 16명의 행정회의 구성원을 임명했으며, 이들은 행정장관에 대한 조언은 물론 실질적인 정책 결정에도 참여한다.
이프 의원은 "람 장관은 내각에 책임을 묻고 민심을 달래기 위해 내각 개편을 단행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과연 내각을 채울 적절한 인사를 찾을 수 있느냐"라고 지적했다.
그는 람 장관이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에도 불구하고 법안을 단지 '보류'한다고 했다가 9월에야 비로소 '철회'한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이에 대해 "나는 내가 속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해 친중파 진영 내에서 람 장관의 행보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음을 드러냈다.
구의원 선거 참패 후 친중파 진영은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자들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의 문제로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홍콩 내 친중파 정당 중 최대 세력을 자랑하는 민주건항협진연맹(민건련)은 200여 명에 달하는 선거 패배 후보와 그 보좌진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1992년 설립된 민건련은 이번 구의원 선거에 181명의 후보를 냈지만, 고작 21명이 당선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민건련의 구의원 의석은 현재 119석에서 21석으로 무려 98석이나 줄어들게 됐다.
민건련은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들을 위해 친중파 기업이나 중국 본토와 연계된 기업에 일자리를 요청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투명성이 강조되는 상장 기업의 경우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더구나 선거 패배 후보들은 지금껏 정부 제공으로 사용해오던 지역 사무실마저 반환해야 해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됐다.
민간 건물의 사무실을 구할 수도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인 홍콩의 사무실 임대료를 감당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민건련은 현재 입법회 의원과 구의원 등을 위해 운영하는 홍콩 내 200여 개 사무실을 절반으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당 관계자는 전했다.
반면에 이번 구의원 선거에서 전체 452석 중 400석 가까이 차지하는 압승을 거둔 범민주 진영은 구의원에게 주어지는 각종 혜택을 누리며 지역 기반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홍콩 구의원은 매달 3만3천950홍콩달러(약 500만원)의 급여와 4만4천816홍콩달러(약 660만원)의 운영 비용을 지급받으며, 통상 한두 명의 보좌진을 거느린다.
한편 이러한 친중파 진영의 수난에도 불구하고 케빈 융 홍콩 교육부 장관은 강경 발언을 이어가 빈축을 사고 있다.
융 장관은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홍콩 정부는 시위 사태와 관련해 '부적절하게' 처신하는 교장과 교사의 자격을 박탈할 권한을 지니고 있다"며 "최근에도 두 명의 교사에게 전근 조처를 내렸으며 추가 처벌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6월 초 송환법 반대 시위가 시작된 후 시위에 참여하거나 동조해 체포된 홍콩 교사는 80여 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4명의 교사가 사임하거나 정직 처분을 받았다.
이에 민주파인 입킨유엔(葉建源) 의원은 "오직 학교 이사회만이 교장이나 교사를 해고할 수 있다"며 "융 장관의 발언은 학교의 자율경영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자 '백색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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