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베네수엘라에 '깜짝' 자유시장…모처럼 성탄연휴 활기
텅빈 매대에 상품 넘쳐나…WP "미봉책이지만 거덜난 경제에 활력"
"볼리바르 보다 3배 많은 달러 유통"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21세기 사회주의를 표방하던 베네수엘라가 성탄 연휴를 맞아 부분적이나마 자유시장 경제를 깜짝 도입됐다.
이 때문에 지난해와 달리 올해 성탄 연휴에는 매대에 상품이 넘쳐나고 거래도 활기를 띠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생필품 가격 통제, 수입품 고율관세 부과, 미 달러화 사용 제한 조치 등을 최근 잠정적으로 완화하는 조처를 했다.
이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율도 지난해 150만%에서 최근 1만5천%로 10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일시적일 수 있으며, 농업 용지 몰수 및 기업 압수 등과 같은 보다 큰 전략적 밑그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베네수엘라 경제에 대한 '일회용 반창고' 역할과 같다고 신문은 평가했다.
하지만 새로운 조치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한때 썰렁했던 매대는 쇠고기, 치킨, 우유, 빵 등 성탄 연휴 상품들로 넘쳐났다. 다만 가격이 너무 높아 인구의 상당 부분은 상대적으로 더 박탈감을 느끼게 됐다.
그러나 돈이 있는 베네수엘라인들은 새로 문을 연 수십 군데의 매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 가운데는 '짝퉁' 월마트도 최소한 한 곳 있고 매장에는 치리오스 시리얼, 이탈리아 햄, 커클랜드 시그니처 올리브유 등 베네수엘라 맞은편 미국 마이애미주 코스트코 매장 등에서 컨테이너로 사들여온 물건 등이 넘쳐났다.
리카르도 쿠사노 베네수엘라 상의 회장은 "정부가 다른 방도로 경제를 되살릴 수 없게 되자 자유 시장을 도입하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사회주의자들이 집권하고 있지만,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패배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초인플레와 경제 붕괴에 시달린 베네수엘라인들은 지난해 성탄절 변변한 아이들 장난감조차 살 수 없어 '불빛 없는 크리스마스'라고 한탄했다.
하지만 경제가 조금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거품이 낀 수도 카라카스를 중심으로 거리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많은 성탄 연휴 장식물들이 가게 안에 갑자기 진열되고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과 옷가지를 사는 부모도 더 많아졌다고 업자들은 말했다.
또 수입 자동차 부품을 보다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자 자가용을 가진 사람들이 너도나도 차를 끌고 나오면서 수도는 수년래 최악의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을 지경이다.
이번 규제완화로 동부 카라카스의 높은 담장 너머 저택에 사는 소수의 부유층이 특히 더 즐거운 연휴맞이를 했다.
최근 베네수엘라 정부가 소매 가격 통제 노력을 포기하자 이전에 거의 유통이 안 되던 빵, 닭고기, 쇠고기가 시장가격에 팔리면서 최소한 공급망을 통한 농장 생산 판매가 정상화되고 있다.
달러도 더 많이 통용되고 있다.
이는 베네수엘라인 450만명이 굶주림과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최근 수년간 해외로 나가 올해만 35억달러(약4조원)를 국내로 송금했기 때문이다. 카라카스에 있는 경제분석업체인 에코애널리티카에 따르면 송금액이 2년 전의 3배 이상이다.
일부 추정치에 따르면 원래 베네수엘라 통화인 볼리바르보다 3배나 많은 달러가 풀려 베네수엘라 경제는 이미 달러 통용지대가 됐기 때문에 인플레도 역설적으로 안정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비공, 전기기사, 엔지니어를 비롯해 가구의 60∼70%가 정기 급료를 달러로 받으면서 일부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올해 좀더 즐거운 성탄절을 보낼 만큼 어느 정도 구매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7세 아들에게 스파이더맨 장난감을 사 줬다는 옐리차 미네로스(33)는 "작년은 경기가 매우 안 좋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안 났다"면서 "올해는 형편이 좀 나아져 아이들에게 장난감도 사줄 수 있게 돼 많이 기쁘다"고 덧붙였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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