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함정수사로 체포한 179명 중 백인 0명"…美 인종차별 논란
10년간 뉴욕 남부지역 함정수사 자료 분석…2명 제외한 전원 흑인·라틴계
함정수사 피고 변호인이 문제 제기…담당 판사 DEA에 관행·절차 자료 공개 명령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올해 초 미국 뉴욕 북부 맨해튼에서 수사당국이 실시한 통상적인 마약 단속 작전이 인종 차별 논란에 휩싸였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 마약수사국(DEA)의 함정수사에 빠져 검거된 요핸시 로페즈(32)가 법원에서 당국의 함정 수사가 인종적으로 편향됐다는 주장을 펼치면서다.
로페즈는 올 초 다른 6명과 함께 80만 달러 상당의 마약을 숨겨둔 집을 털려다가 당국에 붙잡혔다.
이들이 범행 대상으로 삼은 집은 DEA가 마약사범을 유인하기 위해 꾸며놓은 일종의 미끼였는데 로페즈 일당이 여기에 걸린 것이다.
로페즈의 변호를 맡은 뉴욕연방변호인협회(FDNY)는 법원에서 지난 10년간 뉴욕 남부지역에서 당국이 함정수사를 통해 검거한 179명 가운데 백인은 단 한명도 없다며 당국의 수사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이 179명 가운데 2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흑인 아니면 라틴계로 나타났다.
담당 판사는 변호인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지난달 검찰에 DEA가 이런 종류의 작전을 실시할 때의 관행과 절차에 대한 자료를 변호인측에 공개하라는 파격적인 명령을 내렸다. 아울러 언제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이런 함정수사를 시작하는지에 대한 내부 문서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자료로 무장한 국선변호사들이 이끌어낸 이같은 법원의 결정은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이와 유사한 혐의로 재판받는 피고인들의 형량이 바뀔 수도 있다.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필라델피아 등 다른 지역의 연방항소법원에서도 인종 차별을 우려해 수사 규정집이나 내부 통신망을 공개하라며 피고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 기록이 있다.
미시건대 법학대학원의 손자 스타 형법 담당 교수는 "이런 (수사당국의) 프로그램에 대해 법원이 우려하고 있다"며 "함정수사라는 특정한 수사 프로그램에 대해 나온 결정이기는 하나 (당국의) 선별적인 치안유지활동과 관련해 피고에게 좀 더 유리한 기준이 세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마이애미에서 일어나는 마약 탈취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도입된 함정수사의 문제점이 지적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 기법은 성공적이라는 평가 속에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됐으나 인종적으로 편향됐다는 주장이 수차례 제기됐다.
미 일간 유에스에이투데이는 2014년 미 주류·담배·화기류 단속국(ATF)이 미 전역에서 함정수사를 통해 체포된 이들의 91%가 소수집단에 속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ATF 고위 관계자는 "표적 수사가 아니다"라며 "최악 중의 최악"이 수사 대상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DEA도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DEA는 성명에서 "역사상 최악의 마약 위기를 부채질하는, 수백만달러 상당의 불법 마약을 유통하는 주요 불법 거래상이나 조직에 수사 초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 주정부는 또 이러한 인종적 불균형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라틴계 미국인들이 같은 인종을 모집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며, "로페즈는 배후에서 일당을 모으고 조율한 조직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로페즈 측 변호인들은 브롱크스나 맨해튼의 인구 비율과 비교해도 함정수사로 아프리카계나 라틴계를 검거하는 비율이 과도하게 높다며 당국의 해명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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