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 불만 곪았다…역대 최저실업률 이면엔 '저질 일자리'
영국·프랑스·스페인 10년간 비정규직 양산 닮은꼴 행보
"노란조끼·브렉시트·포퓰리스트 득세 등 사회갈등 자극한 요인"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유럽에서 불안정한 일자리를 둘러싼 노동자들의 불만이 사회 갈등의 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유럽의 일자리는 정부 지표를 따졌을 때 10년 전보다 눈에 띄게 늘어났지만 프랑스, 스페인, 영국 노동자들은 정부를 향해 분노를 발산하고 있다.
역대 최저 실업률을 견인한 유럽 일자리 대부분이 사회보장보험 등의 혜택을 기대할 수 없는 파트타임, 임시직, 자영업 성격이 있는 '저질 일자리'였기 때문이다.
18일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 일자리의 임시직 비율은 14.2%로 노동시장이 유연하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4%)보다도 훨씬 높았다.
빈곤의 위험에 처한 노동자 비율은 2007년 7.9%에서 지난해 9.2%로 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9년 유럽 전역에서 실업률이 치솟았을 때 각 국가가 고용 안전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대응책을 내놓다 보니 일자리 숫자는 증가했을지 몰라도 고용의 질은 악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비정규직 비율을 자랑하는 나라는 스페인이다. 가장 최신 유럽연합(EU) 통계에 따르면 스페인의 비정규직 비율은 26.5%로 노동자 4명 중 1명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호텔 청소부로 일하는 미리암 수아레스는 한 달 월급으로 1천300 유로를 받았으나 2012년 스페인 정부가 노동법을 바꾸면서 호텔업계 단체교섭이 불가능해지자 월수입이 700유로로 반 토막 났다.
수아레스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나 4월 스페인 총선에서 대부분의 사회보장을 확대하는 공약을 내세운 좌파 포퓰리스트 정당인 포데모스의 약진을 이끌었다고 WSJ은 분석했다.
오랜 기간 세계에서 가장 노동자에게 친화적인 국가 중 하나로 꼽혀왔던 프랑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임시직 고용률은 2009년 13%에서 2018년 16.2%로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 불만을 품은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11월 정부의 유류세 인상계획에 반대하며 시작된 '노란 조끼'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에마니엘 마크롱 대통령의 퇴진 요구로 이어지기도 했다.
마크롱 정부는 노란 조끼 시위의 규모와 파급력이 예상을 넘어서자 유류세 인상 백지화, 최저임금 인상, 소득세 인하 등 수습책을 잇달아 발표했으나 1년이 지난 지금도 분노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남아있다.
AFP, dpa통신 등에 따르면 노란 조끼 시위대는 17일(현지시간) 파리 한복판에 있는 명품 백화점 '라파예트 갤러리' 3층에 반(反)자본주의, 반정부 현수막을 내건 채 시위 1주년을 축하하는 기습시위를 벌였다.
영국은 실업률이 역대 최저치이고 올해 9월 현재 성인들의 고용률이 76.1%에 달해 1971년 이후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 싱크탱크 레졸루션 파운데이션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새로 창출된 일자리의 3분의 2는 기간을 정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일이 주어지는 계약직부터 자영업 성격이 강한 일자리까지 불안정한 형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내 고용지형이 안정성이 떨어지고 월급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바뀌다 보니 이를 둘러싼 불만이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결정한 국민투표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나왔다.
워릭대학교 티에모 페처 교수는 영국에서 고용 불안정성이 높아지다 보니 국가 지원에 의존하는 국민이 늘어났고, 정부 지원이 크게 줄어든 지역에서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경향을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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