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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홍콩 금융가 센트럴 "홍콩에 자유를" 함성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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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홍콩 금융가 센트럴 "홍콩에 자유를" 함성 가득
수천 명 직장인 모여 '점심 시위'…"홍콩과 함께 싸우자" 구호 외쳐
길바닥과 벽 곳곳에는 '살인 경찰'·'나치 중국' 등 낙서
일부 시민은 시위대에 반감 표출…친중 시민과 시위대 충돌하기도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14일 홍콩의 금융 중심가이자 세계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 중 하나인 홍콩 도심 센트럴에는 낮 12시를 넘어서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루이뷔통, 조르지오아르마니 등 명품 매장들로 둘러싸인 랜드마크빌딩 앞 사거리를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오후 1시를 넘어서자 수천 명에 달했다.
시민들이 시위 현장에 경찰 차량이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보도블록을 뜯어내 도로 위에 흩뜨려 놓는 모습도 보였다.



이윽고 수천 명의 시민은 오른손을 번쩍 들고 손가락을 쫙 펴 보이면서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5대 요구,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五大訴求 缺一不可)", "자유를 위해 싸우자. 홍콩과 함께(Fight for freedom, stand with Hong Kong), "광복홍콩 시대혁명(光復香港 時代革命)" 등의 구호였다.
쫙 펴 보인 다섯 손가락은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을 말한다.



'런치 위드 유(함께 점심 먹어요) 시위'로 불리는 이 대낮 도심 시위는 지난 11일부터 시작했다.
홍콩과기대 2학년생 차우츠록(周梓樂) 씨가 시위 현장에서 추락했다가 지난 8일 숨지고, 지난 11일에는 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21살 학생이 쓰러진 것에 격분해 자발적으로 벌어진 시위였다.

센트럴에 있는 금융기관에 다닌다는 한 30대 남성은 "처자식이 있는 몸이기 때문에 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서진 못하지만, 최소한 점심시간에 여기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시위대에 대한 지지를 나타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사용하는 폭력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경찰이 다음에 무슨 일을 저지를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센트럴 시위 현장 곳곳에서는 갈수록 시위 진압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경찰에 대한 깊은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랜드마크빌딩 사거리 길바닥에는 '홍콩 경찰은 살인자(HK POLICE MURDER)', '홍콩 경찰은 강간범(HK POLICE RAPE)' 등 홍콩 경찰을 비난하는 낙서로 가득했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20대 직장인 우 씨는 "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폭력 진압을 조사할 독립된 위원회를 반드시 구성해야 한다"며 "캐리 람이 말하는 경찰민원처리위원회(IPCC)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수개월째 이어지는 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IPCC를 통해 경찰 진압 과정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우 씨는 "IPCC가 경찰 진압 과정을 조사한다는 것은 경찰이 경찰의 잘못을 조사한다는 얘기로 말도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하기는커녕 홍콩 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 방침으로 일관하고 있는 중국 중앙정부에 대한 증오도 가득했다.
센트럴 곳곳의 건물 벽과 기둥 등에는 '홍콩을 자유롭게 하라. 차이나치를 멈춰라(FREE HK! STOP CHINAZI' 등의 낙서로 가득했다.
차이나치(CHINAZI)는 중국(CHINA)과 나치(NAZI)를 합친 말이다. 중국 공산당이 독일 나치와 같은 공포정치를 펴고 있다는 뜻으로, 최근 홍콩 곳곳의 시위 현장에서는 이 낙서를 볼 수 있다.




점심 시위에 참여했던 직장인들이 하나둘씩 회사로 돌아가던 때인 오후 2시 30분 무렵 랜드마크빌딩 사거리 한쪽에서 갑작스러운 소란이 일어났다.
수십 명의 사람이 한 시민에게 우르르 몰려가 욕설과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이 연출됐다. 시위에 반감을 가진 한 50대 남성이 시위대와 심한 언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얼굴 등을 두들겨 맞은 이 남성은 얼굴에서 피를 흘리면서 바로 옆 다싱(大新)은행 지점으로 피신했고, 응급 구조요원이 들어가 치료하려고 했으나 이를 거부했다.
곧바로 경찰 차량이 사이렌을 울리면서 출동했고, 폭동 진압 경찰 수십 명이 현장에 출동했다. 이들은 다친 남성이 들어간 다싱은행의 셔터를 내리고, 주변을 삼엄하게 지켰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도로 위에 시위대가 흩뜨려 놓은 보도블록을 치우면서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
시민들은 도로 위를 떠났으나, 인도 위에서 경찰을 향해 "더러운 경찰", "경찰을 즉각 해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처럼 시위대의 경찰을 향한 증오심이 점점 높아가는 가운데 홍콩의 일부 시민들은 시위대의 경찰에 대항하는 폭력적인 행위나 '도심 교통 마비' 전략에 따른 거친 행동에도 달갑지 않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홍콩에 거주하고 있다는 한 30대 외국인 여성은 도로 위에 흩어진 보도블록을 가리키면서 "이는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용납되는 일이 아니다"며 "시위대와 경찰의 폭력 모두 중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센트럴 시위에서는 현장을 취재하던 여기자가 다쳐 응급 구조요원의 치료를 받기도 했다.
시위가 끝난 후 홍콩 경찰은 도로 위에 나뒹구는 보도블럭을 치우며 주변 인도에 모여 있는 시민들에게 빨리 직장이나 집으로 돌아갈 것을 요청했다.
이날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타이쿠 지역에서는 시위대가 지하철역 내 폐쇄회로(CC)TV 등을 파손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위안랑 지역에서는 100여 명의 친중파 시민이 시위대의 폭력을 비난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송환법 반대'를 외치며 평화적인 행진으로 시작된 홍콩 시위가 6개월째로 접어들었지만 점점 긴장감이 높아지는 '강대강' 대치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면서 출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듯했다.




ssah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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