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트럭에 9시간 넘게 갇혀"…英 밀입국 참사 재구성
컨테이너 탄 채 벨기에 항구 진입 추정…英 도착 후 주검으로 발견
英 매체 "수사당국, 아일랜드 밀수조직에 초점"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영국 남서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중국 출신' 밀입국자 39명은 어두운 냉동 컨테이너에서 9시간 이상을 공포와 추위에 떨며 생을 마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발견된 냉동 컨테이너(트레일러)는 이달 22일(중부유럽 현지시간) 오후 2시 49분에 벨기에 제브뤼헤항(港)에 도착한 것으로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디르 드 포 제브뤼헤항만청 회장은 컨테이너가 항구 후문에 도착했을 당시 봉인이 된 상태였던 점으로 미뤄 밀입국자들이 항구에 도착하기 전 이미 컨테이너에 숨어 있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취재진에 말했다.
항구 당국이 봉인이 훼손된 화물은 페리에 싣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영하 25도 '냉동 컨테이너' 안서 숨진 39명은 중국인…영국 '발칵' / 연합뉴스 (Yonhapnews)
제브뤼헤항구를 출발한 컨테이너는 이튿날 0시 30분(영국 현지시간)에 영국 남서부 퍼플리트 페리터미널에 도착했다.
35분 후인 23일 오전 1시5분, 북(北)아일랜드 아마 출신의 운전기사 모 로빈슨(25)이 모는 스캐니아 트럭이 페리터미널에서 컨테이너를 수령했다.
로빈슨의 트럭은 앞서 이달 20일 아일랜드 더블린으로부터 영국 본섬에 들어왔다.
로빈슨은 페리터미널 근처 산업단지에 정차한 후 컨테이너를 열고서야 39명이 모두 숨진 것을 인지하고 구급당국에 신고했다.
제브뤼헤항만당국의 봉인 점검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면 밀입국자들은 9시간 넘게 좁고 어두운 냉동 컨테이너 안에서 갇혀 있었던 셈이다. '브리티시 드림'의 꿈을 안고 컨테이너에 몸을 실었던 이주민 39명은 스스로 영국 땅을 밟지도 못하고 얼어붙은 주검으로 발견됐다.
정확한 사인이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영국 매체는 이들이 냉동 컨테이너에서 동사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영국 타블로이드 매체 '이브닝 스탠더드'는 로빈슨이 시신 39구를 본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고 24일 보도했다.
보수 성향 일간 텔레그래프 보도에 따르면 당국은 로빈슨의 주소지 아마 카운티 남부에서 활동하는 아일랜드 밀수조직을 이번 밀입국 범죄 주체로 의심하고 있다. 북아일랜드 경찰은 살인 혐의로 체포된 로빈슨 외에 용의자 3명을 파악하고 이들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벌이고 있다. 텔레그래프는 이 밀수조직이 북아일랜드 반정부 민병대에 연계됐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24일 아마 카운티에서 로빈슨과 부모의 집, 그리고 다른 한 곳을 수색했다.
용의자 3명 중 1명은 스카니아 트럭을 소유한 불가리아 바르나 소재 기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사가 발생한 컨테이너는 '글로벌 트레일러 렌털'(GTR)이라는 아일랜드의 컨테이너 임대업체로 밝혀졌다.
GTR는 이달 15일 문제의 냉동 컨테이너를 주당 275파운드(약 42만원)에 빌려줬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번 참사는 2000년 도버에서 중국인 58명이 숨진 사건과 여러 가지 면에서 닮았다.
당시 수사 결과 유럽 전역의 범죄조직과 협력, 활동하는 밀입국조직 '스네이크헤드'가 1인당 2만파운드를 받고 중국인 일행을 베이징부터 동유럽을 거쳐 네덜란드로 이동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언론은 퍼플리트 페리터미널 같은 소규모 항만과 냉동 컨테이너가 밀입국 조직의 범죄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우려가 계속 나왔는데도 이러한 참사가 재발했다는 데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한편 사망자 39명의 국적이 중국으로 보인다고 언론 보도로 알려졌으나 25일 영국 주재 중국대사관은 사망자들의 국적이 중국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고 웹사이트를 통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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