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中인민해방군과 첫 대치…야당 "너무 위험한 행동"(종합4보)
야당 "총 닦으려다 총 맞을 수 있는 행동"…친중파 "일부러 도발"
'마스크' 쓴 홍콩인 대규모 시위…"임시정부 수립" 주장까지 나와
지하철 운행 중단·쇼핑몰 폐쇄…은행 앞 '현금 인출' 장사진
중국계 은행·점포 집중 공격…본토에선 "인민해방군 투입해야"
(홍콩·베이징=연합뉴스) 안승섭 김윤구 특파원 = 홍콩 정부가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을 시행했지만,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사흘째 벌어지는 등 반(反)중국 시위가 되레 격화하는 모습이다.
더구나 시위대가 홍콩 주둔 중국 인민해방군과 처음으로 대치하는 모습까지 연출돼 사태의 극단적인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마스크' 쓴 홍콩인 대규모 시위…"임시정부 수립" 주장까지 / 연합뉴스 (Yonhapnews)
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명보 등에 따르면 이날 홍콩섬과 카오룽에서 2개의 그룹이 오후 2시부터 수만명 규모로 가두행진을 했으며, 저녁 늦게까지 시내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다.
한 그룹은 홍콩섬의 코즈웨이베이에서 센트럴 차터가든까지, 다른 그룹은 카오룽의 침사추이에서 삼수이포까지 향했다.
시위대는 빗속에서 우산을 들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마스크를 쓰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 몽콕 등을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일부 시위대와 경찰은 격렬하게 충돌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벽돌과 화염병을 던졌고 경찰은 최루탄을 발사했다. 로이터통신은 경찰이 여러 곳에서 뚜렷한 폭력 행위가 없었는데도 최루탄을 쏘기도 했다고 전했다.
코즈웨이베이, 프린스에드워드, 조던 등 곳곳의 중국건설은행 ATM 등이 파괴되는 등 중국 기업에 대한 공격은 계속됐다.
시위대는 몽콕 인근의 중국 휴대전화 샤오미 매장에 불을 질렀으며, 중국 본토인이 소유한 식당을 때려 부수기도 했다.
이날 시위대는 몽콕 역의 폐쇄회로(CC)TV, 스프링클러 등을 파손해 몽콕역 안팎이 온통 물바다가 됐다.
한 택시 기사가 차량을 둘러싼 시위 참가자들 속으로 차를 몰아 여러 명을 치었다가 시위대에게 심하게 구타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어느 시위 참가자는 완차이에서 굴착기를 몰고 와 도로를 파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한 방송사 기자는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에 화상을 입었고, 전직 여배우 셀린 마는 시위대가 중국은행 점포를 훼손하는 것을 찍다가 구타당했다.
이날 시위에서는 일부 참가자들과 홍콩에 주둔 중인 중국군 사이에서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시위대 몇백명이 중국군 막사 벽에 레이저 불빛을 비추며 항의의 뜻을 표하자, 한 중국군 병사가 지붕 위로 올라가 중국어와 영어로 "경고. 여러분은 법을 위반하고 있으며, 기소될 수 있다"라고 적은 경고문을 들어 보였다.
한 인민해방군 병사는 경고의 의미로 노란 깃발을 들었고, 여러 병사들이 시위대의 동태를 감시했다. 얼마 후 시위대는 다른 지역으로 향했다.
홍콩 주둔 중국군이 시위대와 대치해 경고 깃발을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두고 로이터는 홍콩 시위대와 중국 인민해방군 사이의 첫 직접 접촉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에 대해 홍콩 야당 의원 투진선은 "시위대의 행동은 너무나 위험한 행동으로, 중무장한 인민해방군과 충돌할 경우 어떤 대응을 할지 알 수 없다"며 "인민해방군이 레이저 불빛의 위협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당에서는 시위대의 이번 행동이 "총을 닦으려다가 총에 맞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친중파 진영에서는 시위대의 이번 행동이 고의적인 도발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보안국장을 지낸 레지나 입 신진당 당수는 "시위대의 행동은 지극히 도발적이고 위험한 것으로, '함정'일 가능성도 있다"며 "민감한 정세를 이용해 인민해방군의 도발을 끌어낸다면 서방이 이를 빌미로 개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4일 홍콩 정부는 시위 확산을 막는다며 공공 집회나 시위 때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을 발표하고 5일 0시부터 이를 시행했다. 이를 어기면 최고 1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홍콩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고 4일부터 홍콩 곳곳에서 격렬한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타이완뉴스에 따르면 지난 4일 집회에서 시위대 수천명이 미국독립선언을 일부 차용한 '홍콩 임시정부 선언'을 낭독하는 일도 있었다.
이 선언문은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를 더는 신뢰하지 않으며 홍콩의 통치기구로서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금의 권위주의적 정부 대신 홍콩인들에게 자유와 민주, 인권을 안겨줄 임시정부를 설립한다고 설명했다.
선언문은 임시정부 대통령과 임시 의회 의원 선출 등 7가지 로드맵도 제시했다.
이 선언문의 작성자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나 중국 중앙정부도 아직 반응이 없다.
한편 홍콩 경찰은 새 복면금지법에 따라 지난 5일 밤 처음으로 적어도 13명의 시위대를 체포했다. 이들 대부분은 불법 집회 참가 혐의도 받았다.
6일 집회는 경찰의 허가를 받지 않았으며, 경찰은 코즈웨이베이와 센트럴 지역에 대규모 시위 진압 병력을 배치했다. 이날도 수십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이날 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모두 마스크나 가면 등을 쓰고 "홍콩이여 저항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부 시위대는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해 저항의 상징이 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가톨릭 신자인 가이 포크스는 1605년 가톨릭과 갈등을 빚는 영국 성공회 수장 제임스 1세 국왕을 암살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인물이다.
데니스 궉 등 야당 의원 24명은 전날 복면금지법이 홍콩의 실질적인 헌법인 '기본법'에 어긋난다며 고등법원에 복면금지법 시행을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이를 거부했다.
야당 의원들은 "정부는 법을 발의할 수 있지만, 법을 제정하는 것은 입법회의 몫"이라며 "캐리 람 행정장관은 정치적 반대자를 반역죄로 몰아 탄압한 영국 헨리 8세와 같다"고 맹비난했다.
홍콩 시민들의 분노를 더욱 키운 것은 경찰이 쏜 실탄에 맞은 14살 소년이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었다.
지난 4일 저녁 위안랑 지역에서 시위를 벌이던 14살 소년이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하다 경찰이 쏜 실탄을 허벅지에 맞고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시위 참가자가 경찰의 총격을 당한 것은 지난 1일 18세 고교생이 경찰이 쏜 실탄을 가슴에 맞고 중상을 입은 후 두 번째다.
하지만 경찰은 사과나 해명은커녕 전날 저녁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이 14세 소년을 폭동과 경찰관 폭행 혐의로 체포했다. 홍콩에서 폭동 혐의로 유죄를 받으면 최고 징역 10년형에 처할 수 있다.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전날 동영상 성명을 통해 "어제 홍콩은 폭도들의 극단적인 행동 때문에 '매우 어두운 밤'을 보냈다"며 "함께 폭력을 규탄하고 폭도들과 결연히 관계를 끊자"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시위 사태가 격화해 시위대의 지하철 기물 파손이 잇따르면서 전날 홍콩의 모든 지하철 운행이 중단됐다.
이날도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고 있으며, 시위가 예상되는 지역의 주요 역은 모두 폐쇄됐다. 홍콩 내 전체 91개 지하철역 중 이날 오전부터 폐쇄된 역은 49곳에 달하며, 저녁 들어서는 거의 모든 역이 폐쇄됐다.
도심 주요 쇼핑몰도 시위로 인한 피해를 우려해 이날 문을 열지 않았다.
시위대가 중국은행 등 중국계 은행을 공격해 현금인출기(ATM)와 기물을 파손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은행 ATM 앞에 장사진을 이루고 현금 인출에 나서는 모습도 시내 전역에서 목격됐다.
주말 시위로 홍콩 시내 전체 3천300여 개 ATM 중 10%가 파손됐다고 홍콩은행협회는 밝혔다.
중국은 일주일짜리 국경절 연휴가 아직 끝나지 않아 중앙정부 입장 발표나 보도는 별로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위챗(微信·중국판 카카오톡),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등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시위대의 중국 본토 출신 은행원 구타나 중국계 점포 공격 행위 등에 대한 거센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온라인에는 지난 4일 중국 표준어인 푸퉁화(普通話·만다린)를 쓰는 본토 출신 JP모건체이스 직원이 홍콩 본사 앞에서 시위대와 언쟁을 벌이다가 한 시위자에게 구타당하는 영상이 유포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중국 인민해방군을 조속히 투입해 홍콩 시위를 진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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